영어 원서표지에 '김치'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만 가지고도 '빅맥이냐 김치냐'(마빈 조니스 외 지음,김덕중 옮김,지식의날개)는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모던적 문화론이 아니다. 글로벌 경영학자의 세계 읽기다. 대표 저자 마빈 조니스는 시카고경영대학원의 교수이자 투자상담사다. 해외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그는 당연히 재무제표 등과 같은 경제적 측면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는 투자대상국의 국내적 특수성에 관한 정치 사회 문화적 이해를 강조한다. 이 책에서 빅맥이 재무제표와 같은 기본적 보편성을 상징한다면 김치란 한차원 깊은 '특수성'에 대한 메타포다. 왜 김치라는 메타포를 이해해야 할까, 빅맥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투자 성공의 비결이다. 재무제표에 대한 이해는 보편적인 것인 만큼 누구나 하는 것이다. 만일 투자에 성공해서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타자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남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섬세하게 이해해야 일반적인 투자자들과 구별될 수 있다. 타자가 지닌 특수성을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한 대표적 실패사례는 1998년 한국의 여름을 달구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시장 공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이 금융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내 자산이 낮게 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한국의 전체 경제규모는 3천1백70억달러,마이크로소프트의 보유자금은 2천6백억달러였다. 그러나 한글 시장은 보다 큰 복잡성을 지닌 곳이라는 점을 마이크로소프트는 간과했다. 조니스 교수는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이 '한글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적 산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한글이라는 민족의식의 지뢰밭으로 미국의 거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무모하게 돌진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 철수와 '한글 815'의 탄생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례 분석은 다른 여러 나라로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모두가 빅맥을 먹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때보다 김치를 잘 알아야 세계화 시대의 국제관계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김치 역시 빅맥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는 음식이다. 춘천막국수가 춘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탈리아에 가야만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김치를 먹는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한국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 기업들 역시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의 문화적 특수성이 지닌 섬세한 결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깔끔하고 성실한 번역은 독자들이 그러한 섬세한 결을 헤쳐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4백60쪽,1만6천원. 김명섭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