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레이거노믹스 탄생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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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추모와 칭송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성급한 레이건 칭송자들은 그가 죽자마자 10달러 지폐에 들어있는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튼의 얼굴을 들어내고 레이건의 얼굴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 정도다.
세금감면으로 상징되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경제를 살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와 나라 빚만 늘렸다는 비판이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추모의 물결은 비판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정책이 비단 경제학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감세정책과 자유시장경제원리의 소중함을 몸으로 익히고 배웠다.
레이건은 1954년부터 62년까지 미국 최고의 회사였던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것도 회사의 경영방침을 안팎에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대변인으로서 말이다.
전문 기업인은 아니었지만 기업 생리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금을 많이 매기면 기업활동이 왜 위축되는지,기업활동에 정부가 간섭하면 경제가 왜 타격을 받는지 잘 알게 됐다.
그가 대통령 취임사에 담았던 한 마디는 정부간섭 배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두고 두고 회자된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은 정부가 아닙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이지요."
그런 한마디가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GE 대변인으로서 익힌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도 확고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17대 국회에 새로 진출한 기업인들이 있다.
이미 활동중인 기업인 출신 의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기성 정치인들이 갖지 못한 경영 마인드를 의정활동에서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엊그제 뉴욕을 방문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최고경영자(CEO) 출신 시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 듯이 기업인 출신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뭔가 다르다.
레이건이 GE에서 기업생리를 터득하지 못했더라면 레이거노믹스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