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판로확보를 위해 그동안 시행돼온 단체수의계약 제도의 존폐를 놓고 정부와 중소기업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는 단체수의계약 제도가 편중배정 연고배정 등의 부작용과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이고 기협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들은 안정적인 판로확보를 위해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중기청과 기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중기청 등 정부기관과 민간단체 공동으로 구성된 "단체수의계약제도 개편위원회"는 이르면 올해말,늦어도 내년말까지 이 제도를 일괄 폐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서서히 없앨 경우 품목간에 형평성 시비가 일 것을 우려,일괄폐지하는 쪽은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단체수의계약제도를 폐지하는 경우 이를 대체하는 중소기업지원방안을 내달말께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중소기업인들은 최근 중소기업회관에서 폐지반대 집회를 여는 등 강력 반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이와관련,14일 오전 서울 은행회관에서 단체수의계약제도 개편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한다. ◆단체수의계약 운영현황=지난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단체수의계약 구매실적은 1백46개 품목,4조8천9백18억원이었다. 이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총 구매액 74조2천3백18억원의 6.6%,중소기업제품 구매액 46조8천6백77억원의 10.4%를 차지한 것이다. 단체수의계약을 통해 납품한 중소기업은 1만5천1백85개사에 달했다. 대상품목은 65년 1백81개에서 98년 2백58개까지 늘어났지만 우루과이라운드(UR) 정부조달협정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00년 1백54개,2003년 1백46개,올해는 1백38개로 줄었다. ◆문제점=이 제도는 그동안 중소기업들의 경영안정에 기여해 왔으나 경쟁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제한,기업들의 경쟁력을 오히려 저하시키고 물량배분을 둘러싼 비리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도 조합에 가입해야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과의 경쟁뿐 아니라 중소기업간 경쟁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또 조합과 발주기관이 정해준 규격과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참여업체들이 자발적인 기술개발이나 시장개척 노력을 경시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정부는 평가하고 있다. 또 이 제도를 통해 독점적인 수의계약권을 부여받은 조합이사장 가운데 일부는 특정업체에 발주물량을 몰아주는 사례도 있었다. 편중ㆍ연고배정 시비가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공정위 감사원 등과 중소·벤처업계 일부에서도 이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폐지·개편 방안=정부는 이 제도를 폐지키로 내부적으로 확정하고 미국과 일본의 공공구매제도 등 외국 제도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중소기업 공공구매제도를 마련 중이다. 또 제도개편 과정에서 중소업계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작업은 지난 5월 중기청 감사원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조달청 등 정부 관계자와 대학교수 연구원 중소기업협동조합 및 벤처기업 대표 등 1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단체수의계약제도 개편위원회'가 맡고 있다. 개편위원회는 폐지 시기에 대해 올해 말과 내년 6월,내년 말 등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단체수의계약제도를 중소기업간 경쟁 품목제도로 전환하고 현재 임의규정으로 돼 있는 이 제도를 강제규정화해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간 경쟁제도의 적용범위를 물품에서 용역과 공사까지 확대하되 업체간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등급별 경쟁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이 일정 비율의 중기제품을 구입하는 '구매목표비율제도'와 이를 확인하는 시스템인 '중기제품조달지원관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파장 및 전망=기협중앙회와 조합,단체수의계약 참여업체 등은 최근 반대집회를 여는 등 정부의 이같은 폐지방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기윤 기협중앙회 상무는 "단체수의계약제도는 중소기업 판매난 해소에 가장 실효성 높은 지원제도로 지금처럼 중소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폐지된다면 그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며 "제도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경쟁품목제도는 결국 최저가낙찰제도 위주로 흘러가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 제도 개편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소업계에서도 조직화되지 않았을 뿐 이 제도의 폐해를 호소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업체들의 목소리가 높다"며 "중소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밝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 [단체수의계약제도란] 정부나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해당 물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단체(협동조합)를 통해 수의계약 방식으로 구매하는 제도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 시대에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지난 1965년 예산회계법령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일반경쟁입찰이나 중소기업간 경쟁입찰보다 가격조건과 결제조건이 좋아 가장 강력한 중소기업 지원제도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