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5:15
수정2006.04.02 05:18
"우리는 지금 가치(value)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중국 칭다오에 있는 중국 제1의 기업 하이얼.
중국 제조업의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답게 이 회사의 모토는 '하이얼(Haier)& 하이어(Higher)'다.
하이얼은 올해 휴대폰 사업에 신규 진출을 선언했다.
가전에서 출발해 첨단 IT기업으로 변모한 삼성전자의 성공적인 로드맵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이다.
하이얼의 성공신화를 이끄는 조직은 최고 경영자나 R&D(연구개발), 마케팅 담당 부서가 아니다.
생산현장 최일선에서 품질을 생명같이 여긴다는 고객중시 마인드를 종업원에게 교육시키는 조직은 다름아닌 '공후이(工會ㆍ한국의 노조)'다.
지난해 하이얼 공후이의 목표는 품질과의 전쟁이었다.
'중국제품=저가ㆍ저품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공후이가 자체 설정한 활동목표였다.
하이얼은 지난해 매출 8천6억5천만위안(11조4천5백억원)으로 중국기업중 1위를 차지했다.
영업이익은 12억5천7백만위안(2천68억원)으로 2위에 올랐다.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으로부터 지난해 중국기업중 유일하게 전 세계 브랜드 가치 상위 1백대 기업에 들었다.
올해 하이얼 공후이의 목표는 '가치'와의 전쟁이다.
똑같은 제품이지만 성능과 디자인에서 고부가가치를 달성, 고가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쉬리잉(徐立英) 주석(노조위원장)은 "공후이는 근로자의 권익 보호와 함께 회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근로계약에 의한 상하관계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에 기반한 파트너십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경영진과 종업원은 각자 평등한 위치에서 역할이 다른 노동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중국내 조직된 공후이 수는 1백66만개, 조직원만 1억3천만명이 넘는다.
이들 공후이는 이러한 노사 인식을 바탕으로 경영의 감시자이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장을 지도하는 '독군(督軍)'의 역할을 맡고 있다.
생산ㆍ기능직만 가입한 한국의 노조와 달리 공후이는 총경리(사장)외 전 임직원이 가입, 자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운영방식을 갖고 있다.
중국에 진출, 성공한 국내기업들도 공후이와의 탄탄한 협력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내 굴삭기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대우종합기계가 대표적인 케이스.
이 회사 옌타이(煙臺)공장은 지난 98년 동남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나 공후이와의 대협상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당시 중국 내수시장이 미미하던 때여서 동남아 지역 수출이 중단돼 공장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종업원을 해고해야할 상황에 이르렀으나 상여금 반납과 3개월간 무상휴가를 실시,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
채규전 총경리는 "노사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상호 신뢰가 형성돼 이후 매년 임금협상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손진방 LG전자 중국지주회사 사장은 "한국의 노조는 업무의 대부분을 조합원의 이익추구에 매달리지만 공후이는 회사 발전에 절반의 역량을 할애한다"며 "중국의 고도성장에는 공후이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ㆍ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