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相生의 길' 찾는다] (3) '강성노조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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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툭하면 파업이고,그것도 몇 달째 지속되기 일쑤였지요."
울산지방노동사무소의 박상보 근로감독관은 과거 울산지역 노사분규를 회상하며 넌더리를 냈다.
사실 불과 3~4년전만 해도 울산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할정도의 극렬한 파업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돌멩이와 쇠파이프는 기본이고 화염병, LPG통 등 치명적 손상을 입힐수 있는 위험물질까지 동원돼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 울산의 노사현장은 완전 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박 감독관은 "울산을 노사현장의 싸움터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이제 협력과 화합을 통한 상생의 일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강성기조를 유지하는 현대차노조를 제외하면 대형사업장은 모두 참여와 협력쪽으로 운동기조를 틀어버린 것이다.
노사관계가 상생과 협력으로 변화하는 중심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95년 현대중 노사가 무분규로 타결하면서 이 지역 노사관계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현대중의 변신은 철옹성 같던 현대계열사와 인근 사업장들의 연대투쟁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현대중 노조는 회사 내부 문제에 상급단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2월 회사내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분신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은 곧바로 분신대책위를 구성, 정치적 이슈로 내걸고 비정규직 차별철폐 운동에 나섰으나 현대중 노조는 움직이지 않았다.
탁학수 노조위원장은 "분신사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어 상급단체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철 노조기획부장은 "노조원들이 극심한 파업으로 인한 후유증을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실속없는 정치투쟁에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대중의 변신 이후 울산지역에는 노사분규가 급격히 사라지고 생산 분위기가 살아났다.
지난 2001년 효성 태광산업 고합 등 화섬업계 3개사 장기파업을 겪었지만 다음해부터 앙금을 털어내고 안정을 되찾고 있다.
노사분규가 회사와 근로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83일간의 장기파업을 경험한 태광산업 노조는 해고자 문제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을 어겨 해고된 근로자들의 복직을 위해 노조가 깊숙이 개입할 경우 자칫 기존 노사관계까지 악화될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태광산업 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하고 상급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과거 화섬업계의 대표적 강성 노조였던 효성노조는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전환했다.
정치투쟁에서 자유로워진 노조 간부들은 이제 회사 방문자를 위한 '고객 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상덕 태광산업 홍보차장은 "노조가 매일 현장을 돌면서 샤워장, 화장실의 청결상태도 확인할 만큼 사원들의 복리증진에 경영자 못지않은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노사평화 훈풍은 다른 대형 사업장에도 도미노처럼 번져가고 있다.
애경유화 노조는 지난해 5월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붉은 조끼'를 회사에 반납하고 대신 회사로부터 고용안정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5월 노사평화1주년을 기념해 경주에서 노사와 그 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내 최고의 노사평화 사업장을 만들것을 결의했다.
풍산은 지난 2000년2월 항구적 무쟁의, 무파업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다졌다.
이때 회사는 노사갈등이 심했던 지난 90년 해고자와 강성 노조원의 회사 진입을 막기위해 정문 담에 세웠던 '철의 장막'을 10여년만에 걷어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