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에 있는 유니온스틸(옛 연합철강) 부산공장.


부산항 제8부두와 접해 있는 이 공장은 철강공장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경이 잘 되어 있다.


아름길, 장미길, 포도나무길 등으로 명명된 도로를 따라 공장을 둘러보다 보면 화단 한켠에 서있는 약 3m 높이의 커다란 장승 두개가 이채롭다.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장승은 '품질제일대장군'과 '노사화합여장군'.


제2창업을 선언한 지난 2002년에 세운 장승이다.


"당시 회사이름을 연합철강에서 유니온스틸로 바꾸고 '세계 일류의 표면처리강판 전문회사'라는 경영비전을 선포하면서 노사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박국정 공장장(부사장)의 설명이다.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품질개선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는 뜻이 담겨진 조형물"이라는 것.



무분규의 경제적 효과는 이 회사의 영업실적에서 명확하게 입증된다.


10만5천평의 부지에 연간 1백30만t의 각종 냉연강판을 생산하고 있는 유니온스틸에서는 최근 10년간 쟁의행위가 거의 없었다.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무분규로 임ㆍ단협을 타결지었다.


"협상은 단지 협약서를 작성해 서명을 하기위한 자리에 불과할 정도다."(주해식 노조위원장)


매달 오픈미팅으로 경영정보를 전사원이 공유하고 있는데다 공장장과 노조위원장이 수시로 만나 현장의 얘기를 수렴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협상이 필요없다고 한다.


유니온스틸이 처음부터 무분규 사업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0년 17일간의 첫 파업을 벌인데 이어 93년까지 거의 매년 쟁의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88년 4월부터 89년 2월까지 장장 3백7일동안 파업을 벌여 1년 가까이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경영권이 두차례 바뀌면서 고용보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다 투쟁을 해야만 단 1%라도 임금을 더 올릴 수 있다는 당시의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였다.


유니온스틸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


노조가 먼저 회사 측에 손을 내밀었다.


이철우 당시 사장이 취임할 때 노조측이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


경영진도 감사의 표시로 "복지관을 건립해 주겠다"고 화답했다.


이를 기점으로 유니온스틸 노사는 협력적 관계로 돌변(?)했다.


노조측이 임금인상안을 백지위임하자 회사측은 고민끝에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그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양측은 신뢰를 쌓아갔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85년부터 93년까지 쟁의가 수시로 발생했던 기간 유니온스틸의 매출증가율은 연평균 4.4%에 그쳤다.


특히 88,89년 연속 적자를 보이는 등 이 기간 연평균 순이익은 79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무분규 타결을 이룬 9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증가율은 연평균 8.2%로 높아졌다.


연평균 순이익은 1백87억원으로 불어났다.


매출과 순익 모두 분규시기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부채비율도 85년 3백12%에서 지난해 80% 수준으로 낮아졌다.


실적호전 및 재무구조 개선에 따라 사원복지도 당연히 개선됐다.


92,93년 3%대에 불과했던 임금인상률도 94년 이후엔 5.1∼7%대로 높아졌다.


유니온스틸은 노사안정과 실적호전을 바탕으로 조만간 유상증자를 실시, 강판전문기업으로 한단계 더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니온스틸 외에도 사례는 수두룩하다.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1위를 자랑하는 호남석유화학.


이 회사의 실적도 따지고보면 노사안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천 석유화학 단지내 다른 업체들이 크고 작은 분규로 몸살을 앓아 왔지만 이 회사는 24년간 노사분규가 없었다.


경쟁력이 약해질래야 약해질 수가 없다.


와이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고려제강도 올해까지 10년째 무교섭 타결을 이루어 왔다.


이 회사 한윤민 노조위원장은 "이제와서 파업을 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고 회사는 10년뒤로 후퇴하는 것"이라며 노사 협력을 강조했다.


IMF 당시 부채비율이 1천%가 넘어 사실상 빈사상태였던 쌍용양회가 지난해 1천9백9억원의 순익을 올리고 부채비율을 1백56%로 떨어뜨리는 등 정상화의 길에 접어드는데도 창사이래 한번도 분규를 겪지 않은 노사화합이 든든한 밑받침이 됐다.


쌍용양회 한광호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부담은 결국 근로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회사를 돕는게 정상화를 앞당기고 결과적으로 근로자를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등 1백13개 대형사업장이 파업으로 2조4천9백72억원의 생산손실과 10억5천3백만달러의 수출 차질을 빚은 것과는 정반대다.


경총 관계자는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고통의 기간을 거친데다 내수침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리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노조도 갈등을 지속하다 공멸하느니 한발짝 양보하며 상생을 도모하는게 서로간에 이익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