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원가공개 여부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막말까지 들리는 지경이다. 이 과정에서 원가공개의 이해당사자이자 주체인 대한주택공사는 끼어들 틈조차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에다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한 말씀 하셔야 하는 상황이니 엄두가 날 리 없다. 결국 주인은 뒤로 밀려나고 객(客)들이 무대를 점령한 형국이다. 모든 결정이 성층권(成層圈)에서 논의되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당사자인 주택공사가 하는 일이란 이를 수발하고 보조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공을 포함한 공기업들이 왜 비능률,저효율,관료적 운영,그리고 눈치 보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가공개 요구는 "일정부분의 이윤만을 허용 하겠다"는 추후조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서민 울리는 아파트 가격을 고려할 때 의도 자체는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장사이치"에 맞지 않는다. 장사를 하다보면 많이 남는 장사도 있고 적게 남는 장사도 있다. 너도 나도 똑같은 이윤만 허용되는 세상은 삭막할 뿐 아니라 획일성 때문에 망한 공산사회와 다를 바 없다. 만약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도 원가를 공개해야 하고 정부가 정해놓은 일정률의 이윤만 허용된다면 그곳에는 기업의 창의나 의욕은 찾을 길 없다. "똑같아야 한다"는 평등주의와 획일적 사고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재앙"을 불러 왔는가는 과거 역사적 사실들이 말해준다. 구소련에선 빵 값이 쌌다. 식량배급을 실시하던 공산치하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돼지 사육업자들은 빵보다 곡물사료가 더 비싼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업자들은 식탁 빵을 돼지에게 던져주는 것이 더 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웃지 못 할 일이었다. 정부의 인위적 가격통제,즉 정부개입이 부른 역효과를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고전적 사례의 하나다. 프랑스 혁명기 로베스피에르는 독재자였다. "모든 프랑스 아동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선언,우유가격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타산 맞추기가 어려워진 우유업자들이 소를 도살해 고기로 팔았다. 우유공급이 줄었다. 암시장 우유가격이 치솟았다. 로베스피에르가 목축업자들을 불러 우유가격 폭등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건초 값이 너무 비싸 소를 키울 수 없다"고 둘러댔다. 로베스피에르는 "그러면 건초 값도 내리라"고 명령했다. 이번에는 건초업자들이 건초 밭을 불태워 버렸다. 소에게 먹일 건초마저 없어지자 우유생산은 더 줄어들었다. 결국 우유값은 천정부지로 폭등했고 프랑스 아동들은 우유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로베스피에르의 "가격인하" 명령이 빚은 재앙이었다. 그 뿐인가. 미국 뉴욕 시정부 또한 한때 아파트 임대가격 상한선을 정한 적이 있다. 적자를 볼 수밖에 없던 임대업자들은 아파트 수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비가 새고 창문이 깨지고 파이프가 녹슬어도 임대업자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국 상한선이 설정된 아파트지역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 같은 폐허의 빈민굴로 변해버렸다. "투명성 제고"는 당연한 명제이지만 "원가까지 공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더욱이 임대주택 건설은 어느 한 세대만 그 혜택을 보아서는 안 되는 사업이다. 세상 이치상 어려운 사람은 현재에도 존재하지만 미래에도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복지사업의 일환인 임대사업은 세대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주공이 당대에 이익을 많이 남겨도 후세대를 위한 투자용 내부유보로 남긴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모든 혜택을 당대 사람들만 향유하려 드는 것도 결국 나만 아는 극히 이기적인 사고일 뿐이다. 아파트 원가공개요구는 아파트 가격통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토론도 좋지만 "계급장을 떼면" 군대가 무너진다. 더욱이 과거 역사가 말해주듯 "인위적" 가격 통제는 식탁에 오를 빵을 돼지에게 던져주는 우(愚)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bjyang@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