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여러분~ 행복해지세요 ‥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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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장항선.
이제 갓 젖을 뗀 막내를 안은 일곱 식구는 3등칸에 몸을 실었다.
그가 열두 살 때였다.
그러나 서울은 이방인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화물 트럭을 몰기 시작한 부친은 얼마 안 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됐다.
이때부터 집안 식구들은 장남인 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윤영무 지음, 명진출판)는 저자의 가족사다.
저자 스스로 평하기를 둘째만큼 재테크에 능하지 못하고 셋째만큼 머리가 좋지 못하며 넷째만큼 잘생기지도 못한 '49년차 장남'의 인생 행로이기도 하다.
워드가 아닌 잉크 묻힌 펜으로 쓴 듯한 행간에 가족에 대한 애증이 진솔하게 묻어 나온다.
'갑자기 한 집안의 대들보라는 버거운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단지 삼신할머니 제일 앞에 줄섰다는 이유만으로. 식탁에 앉으면 동생 자리를 건너뛰어 내 앞에 놓이는 노릇노릇한 생선 토막도 싫었고 새 옷도 싫었다. 장남이란 꼬리표, 떼어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저자는 버스비가 없어 울며 학교 가는 셋째 동생을 지켜보면서 또 우여곡절 속 결혼한 아내가 모친과의 갈등으로 두 번씩 보따리를 쌌을 때에 '우리도 남들처럼 그럴듯하게 살아보자고 약속했잖아'라며 다독이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다니던 회사에서 자리를 잡게 되고 부친은 세상을 떠나며 동생들이 하나 둘 가정을 꾸려 나가는 대소사가 흑백필름 돌아가듯 이어진다.
물론 그는 이제 강해졌다.
이 책 후반부에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新) 장남행복론'이 소개돼 있다.
이 땅의 모든 장남 가정을 위한 경영 노하우랄까.
부모에게 용돈 드리는 법, 요령 있는 부부싸움, 동생들의 소원수리 1백% 특급처리 등등.
'자기 혼자 잘살아 보겠다는 마음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스리고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갖추는 것. 집안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 그것이 장남이 할 일이다.'
2백48쪽, 9천5백원.
김홍조 <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