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相生의 길' 찾는다] (6) '일자리 나누기ㆍ임금피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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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과 '일자리 만들기'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청년실업률이 7%를 웃돌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흔만 넘으면 '언제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형편이다.
거리에는 백수가 넘쳐나고 각종 취업박람회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일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워지면서 임금인상에 초점을 맞춰오던 노동조합들이 이제는 고용안정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양상이다.
기업들도 종업원들에 대한 일자리 보장이 노사관계 안정은 물론 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고용 안정을 통한 상생의 길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충북 음성에 있는 풀무원 제3두부 공장.
풀무원이 직영하는 이 공장은 오는 27일 기존의 3조3교대 근무제를 4조3교대로 전환한다.
지금은 하루 18시간 정도 공장을 돌리지만 4조3교대가 되면 24시간 풀가동 체제가 된다.
물론 인력은 더 뽑아야 한다.
풀무원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장가동 시간을 늘리고 각종 교육을 통해 종업원들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보고 이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모델은 유한킴벌리.
회사측은 유한킴벌리와 뉴패러다임센터 등의 협조를 받아 자사 형편에 맞는 4조3교대 시스템을 설계, 설명회에 나섰지만 종업원들의 초기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4조3교대가 되면 3조3교대 때에 비해 종업원 개개인들의 근무시간이 줄어든다.
종업원들은 근무시간이 줄어드는데 따른 급여 감소를 우려, 거부감을 보였다.
1개조를 추가하는데 따른 신규 인력 채용으로 자신들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가세했다.
회사측은 4조3교대가 노사가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내세워 종업원들을 설득했다.
또 남승우 사장이 직접 나서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 회사 비용으로 유한킴벌리 수준 이상의 직무교육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교육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간주, 급여를 보전해 주는 방안도 내놓았다.
사측의 양보 수준이 파격적이자 근로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새 제도를 수용했다.
제3두부공장의 전만기 공장장은 "지금은 근로자들이 새 제도 수용에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풀무원 홍보팀 유인택 차장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지만 공장가동률이 높아지고 각종 교육에 따른 종업원들의 생산성 제고로 회사의 수익성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제3두부공장의 성과를 봐가면서 2006년 7월까지는 춘천 의령 등 다른 공장에도 4조3교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국내 제조업체 중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대한전선은 노동조합이 먼저 제안했다.
대한전선 노조는 회사의 영업실적이 악화돼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자 조합원들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지난해 회사측에 임금피크제를 제안했다.
대한전선은 주력인 전선부문 매출이 2001년 5천6백억원에서 2002년 4천7백억원, 2003년 3천9백억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하성임 기획관리담당 상무는 "수주 물량이 1년에 20%씩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할 상황이었는데 마침 노조측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제안해와 노사화합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보장해주되 일정 연령 이후에는 급여를 삭감하는 제도.
정리해고와 같이 노사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도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하 상무는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인건비 부담이 15% 가량 줄어들었다"며 "노사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정리해고와 그에 따른 노사충돌 없이 비용절감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업원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냄으로써 생산성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종업원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월급이 줄어드는데 마냥 좋기만 하겠습니까마는 요즘 같은 '살벌한' 세상에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게 어디예요. 이제는 모두들 임금피크제를 고마운 제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초고압전선 사업부 김기현씨ㆍ43).
그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연봉이 12% 가량 깎였지만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대한전선 외에 신용보증기금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부산항만공사 수출입은행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각각 자사의 형편에 맞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키로 확정한 상태다.
정부도 원가절감과 고용안정을 통해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제도로 보고 1백70개 공기업 및 산하단체에 이 제도의 도입을 권유하고 있어 노사 상생을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임금피크제와 4조3교대 외에 임금과 고용보장의 빅딜을 통해 노사안정을 이룩한 기업도 적지 않다.
만성적 분규사업장으로 유명하던 통일중공업이 빅딜을 통해 분규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노조의 파업과 회사측의 직장폐쇄가 맞서 위기감이 고조되던 영창악기도 노조가 임금동결을 수용하는 대신 회사는 고용유지를 약속함으로써 안정을 되찾았다.
오상헌ㆍ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