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고수를 찾아서] (3) 이채원씨 ‥ 'IT 버블'에 좌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내의 대표적 '가치투자자'인 이채원 상무가 동원증권에 입사한 때는 1988년 12월.증시가 첫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면서 1,000포인트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증권사는 그 당시 취업 준비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직장이었다.
▶ 깡통의 추억
그가 처음부터 가치투자자였던 것은 아니다.
1989년초 서초지점에 발령을 받은 그는 소위 '트로이카'로 불렸던 금융 건설 무역등 3인방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객들이 그 종목들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1986년초부터 1989년 3월말까지 33배 폭등했던 증권주에 대한 고객의 관심은 절대적이어서 그도 증권주를 매매조언하는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그는 고객들이 비참하게 손실을 당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증시는 1989년 4월초 1,077을 찍은 뒤 트로이카를 중심으로 고개를 떨궜다.
"고객들은 그런데도 '물타기' 등을 위해 외상으로 주식을 샀고, 그 결과 1990년에 들어서는 이른바 '깡통계좌'가 속출했습니다. '깡통계좌 강제정리'를 당해 돈을 모두 날리고 빚더미에 앉은 고객들을 보면서 증권맨 생활을 시작한 셈이지요."
▶ '가치투자'와의 만남
그가 가치투자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93년부터 3년간의 일본 도쿄사무소 근무시절이다.
그는 그곳에서 서적을 통해 워런 버핏이나 벤자민 그레이엄, 피터 린치 등 '가치투자의 거장'들을 접하게 된다.
이후 서울 본사로 복귀한 1996년, 동원증권의 자회사인 동원투신운용에서 펀드매니저로 새 삶을 시작한다.
1997년초에는 50억원 규모의 '꿈드림60-5호'의 운용도 맡았다.
하지만 그해 9월부터 우리나라가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리면서 국내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종합주가지수가 700대초반에서 연말에는 300대 중반으로 반토막이 났다.
주식형펀드들도 그만큼 손실을 냈다.
그는 나름대로 선방했다.
손실폭을 30% 정도에서 막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잘했다고 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고객의 원금을 30%나 까먹은 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됐죠.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원금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주식투자가 필요하다고 절감했습니다. 그때 떠오른게 일본에서 공부했던 가치투자였지요."
◆ 'IT버블' 시기의 좌절
그는 1998년 12월 주식형펀드인 '밸류(이채원)1호'를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가치투자를 표방한 펀드였다.
'밸류1호'는 1999년 상반기까지 승승장구했다.
1백%가 넘는 수익률이 났다.
펀드의 주식투자비중이 50%였던 점을 감안하면 종목당 평균 4배가 올랐다는 얘기다.
SK텔레콤 삼성전자 한국전력 비와이씨 남양유업 대한화섬 롯데칠성 고려제강 등이 그의 펀드 속에 들어 있던 종목들이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해 9월부터 이른바 'IT버블'이 시작되면서 가치투자는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새롬기술이 몇달새 7백배 오른 것을 비롯 다음커뮤니케이션 골드뱅크 데이콤 등 기술주가 수배에서 수십배씩 치솟았으나, 가치주는 오히려 슬금슬금 내렸다.
고객들의 항의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빗발쳤다.
"서너달을 그렇게 시달리다보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손이 심하게 떨려 주식 단말기를 칠 수도 없었죠. 그곳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2월.
이 상무는 장기 휴가원을 냈다.
실은 사직서였다.
한달간을 병원에서 살았다.
'내 투자 방식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한달간의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실적이 확인되지 않은 IT는 그래도 살 수 없다고.
◆ 가치투자 꽃이 피다
그해 4월 그는 동원증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증권사 자체 자금을 이용한 상품주식(일명 K펀드) 운용을 맡았다.
물론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가치주'에 투자했다.
이 상무의 가치투자가 활짝 꽃이 핀 것은 그 때부터다.
2001년 3월까지 1년동안 지수는 40% 가량 하락했지만 그의 펀드는 10%의 수익을 냈다.
펀드 운용 후 4년이 조금 지난 현재까지 누적수익률은 1백60%에 달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롯데칠성을 6만원에 사서 30만원에 팔았고, 코리안리는 8천원에 매입해 4만원에 매도했다.
유한양행 삼천리 SK가스는 한번 산 뒤 4년 넘게 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20% 가량 단기 급락하면서 이 상무도 손실을 봤다.
하지만 손실률은 3%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상무는 "주가 급락으로 그동안 눈여겨봤던 종목들이 저평가 상태로 접어들어간 사례가 많아져 최근 1백억원 가량 주식을 더 샀다"고 귀띔했다.
그는 개인투자자에게는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저위험 중간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방식을 권했다.
가령 1천만원을 투자해 첫해 50% 손실을 보고 원금을 회복하려면 이듬해 1백%의 수익을 거둬야 한다.
하지만 첫해 10%의 손실을 입은 투자자는 다음해 30%만 수익을 내도 돈은 1천1백7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 상무는 "약세장에서는 종합주가지수 하락률의 절반 이내로 손실을 줄이고 강세장에선 시장평균의 절반만 수익을 낸다는 마음가짐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