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번 < 하나로통신 사장 cbyoon@hanaro.com > 옥스퍼드대학의 올 솔즈 칼리지에 있는 시계 문자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 있다고 한다. '사라지는 시간은 우리의 책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강물'이라고 했다. 20세기 러시아 과학사를 이끈 류비셰프는 바로 그 '강물'에 댐을 만든 사람이다. 70여권의 저서와 1백권 분량의 연구 논문을 남긴 류비셰프가 그토록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시간 로드맵'에 있다. '시간 일기'라 불리는 그의 노트 한 페이지를 열어보자.'곤충분류학: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3시간15분).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추가업무:슬라바에게 편지(2시간 45분).' 이렇게 분 단위까지 계산해서 적어놓고 있는 그의 시간 일기는 류비셰프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확장해 놓았다. 시간은 '관리'가 아니라 '지배'다. 인생 82년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해버린 류비셰프는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까지도 '지배'했다. 그 결과 그는 하루 8시간 이상 자고,여가와 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했다. 그런데 토끼가 졌다. 왜 그럴까? 토끼는 뒤에 쫓아오는 거북만 보고 뛰었지만 거북은 산 꼭대기를 보고 걸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루에 한 번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책상에서 한 발 떨어져 앉아보라고.가까이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히려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나무만 보기 위해선 숲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숲 전체를 보기 위해선 숲에서 나와야 한다. 눈 앞의 것만 보는 시각과 전체를 보는 시각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마이크로적 시각과 매크로적 시각이 필요하다. 산에 오를 때 앞만 보고 걸어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눈을 들어 산봉우리를 쳐다 봐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를 알아야 할 때가 그러하다. 류비셰프의 시간 로드맵은 자신의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마이크로적 접근법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샐러리맨의 시간 로드맵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시간의 매크로적 접근이다. 매크로적 시간 로드맵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예견할 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좋은 축구 선수는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있을 곳'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