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 기질이 다분한 작가와 문학적 소양이 있는 조폭두목.상반된 세계의 두 사람이 서로를 부러워하다가 급기야 직업을 맞바꾼다. 정연원 감독의 데뷔작 "나두야 간다"는 자신과 전혀 다른 인생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다. 이른바 "조폭코미디" 계보에 속하지만 한걸음 진화된 작품인것 같다. 조폭 코미디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격앙된 목소리와 심한 사투리,저속하거나 모자란 행동 등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극단적 감정과 욕설을 배제한 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동화처럼 전개된다. 액션 장면도 잔혹하지 않게 연출됐다. 회상 형식을 빌린 싸움 장면은 탱고 리듬과 함께 전개되거나 코믹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때로는 코믹함을 강조하기 위한 과잉 연기가 흐름을 흐트러 놓기도 한다. 가령 김보라가 연기하는 여의사가 생면부지의 조폭들에게 반말 하는 장면은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손창민이 맡은 조폭 두목 윤만철은 역대 조폭코미디에서 가장 '품위' 있는 인물이다. 단정한 매무새를 갖췄고 감정을 자제하며 교양 있는 말을 구사한다. 여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도 안다. 이같은 캐릭터는 조폭이 작가로 제2의 인생을 무리없이 선택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상대역인 삼류작가 이동화(정준호)는 조폭의 대필 작가로 일하면서 허풍스런 면모가 표면화된다. 고정된 이미지와 정반대로 묘사된 두 인물의 행보는 이후 자연스럽게 수렴된다. 조폭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자질을 갖고 있다. 직업이 인성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상황에 걸맞은 성격을 선택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준호와 손창민이 서로 배역을 바꿨더라도 영화의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니까. 조폭 세계에 잠입한 경찰이 조폭 두목의 인품에 감화돼 그의 부하가 됐던 '목포는 항구다'와 함께 '나두야 간다'는 조폭을 가장 우호적인 시선으로 그린 영화 중 하나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