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 최명재 회장(77)이 17년만에 파스퇴르에서 손을 뗐다. 최 회장이 파스퇴르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87년. 회갑의 늦은 나이에 그는 파스퇴르를 세워 저돌적으로 사업을 키웠다. 서울대 상대를 중퇴하고 상업은행에 잠시 머물다 중동으로 들어간 그는 운수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창업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창업 후 신문매체를 이용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광고로 우유업계에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저온 살균우유 논쟁'과 '고름우유파문'은 최 회장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사례다. 초고온이나 고온에서 살균하면 영양소가 파괴된다며 저온살균 우유인 파스퇴르 우유가 좋다고 한 당시 신문 광고는 기존 업체들을 코너로 몰아 넣기도 했다. 저온 살균 우유로 이름을 알린 최 회장은 95년 고름우유 논쟁을 일으켰다. 체세포가 포함된 우유를 고름우유로 지칭하면서 경쟁사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최 회장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경쟁사에 손해배상을 해야 했고 우유소비를 급감시켜 파스퇴르마저 상처를 입는 결과를 자초했다. 최 회장은 소송으로 점철된 10년을 거치면서 파스퇴르를 연간 매출 1천8백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에다 90년대 후반들어 우유소비 감소까지 겹쳐 경영난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까지 겹쳐 98년1월 부도를 내고 같은 해 7월 화의에 들어갔으나 끝내 사업을 매각하게 됐다. 최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강원도 원주에 민족사관고를 설립,전국의 영재들을 데려다 무료로 교육시켰다. 그런 최 회장의 교육열 덕분에 민족사관고는 최고의 명문고로 자리잡았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