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학문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아카뎀고로독'.세계 최초로 국가의 '계획'에 의해 건설된 과학도시다. 1959년 미국을 방문했던 흐루시초프는 과학기술 발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카뎀고로독은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던져주는 '미션(mission)'이고 이를 달성하면 영웅이 됐다. 학자들의 사회주의 낙원으로 불리던 아카뎀고로독은 체제가 다른 나라들에도 과학도시의 원형이 됐다. 우리나라 대덕연구단지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구소련 붕괴 이후 아카뎀고로독의 모습은 한마디로 추락하는 날개 그것이었다. 더 이상 정부가 과학도시를 먹여 살릴 수 없었다. 정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고립된 도시에서 그 공백은 너무도 컸다. 물론 지금은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에 따라 아카뎀고로독도 변화하고 있지만…. 요즘 혁신클러스터(집적지)라는 말을 너무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혁신클러스터는 의외로 적고,그렇지 못한 혁신클러스터는 수도 없이 많다. 그 이유는 갖가지겠지만 그래도 손에 잡히는 것은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면 쉽게 될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게 혁신클러스터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국가라면 생각해 볼 대목이다. 공공기관과 연구소를 이전하면 성공적인 클러스터가 될까. 그렇게 해서 성공한 혁신클러스터를 찾기도 어렵다. 혹자는 프랑스 사례를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지에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대학 중심의 혁신클러스터는 어떤가. 어쩌면 너무 과장 선전되고 있는 게 대학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영국 대학들의 '파크'들이 좋은 보기다. 물론 그렇게 결론내리면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밸리는 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대학이 아니다. '기업형'이라는 수식어를 필요로 하거나 '연구기업(research enterprise)'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대학이다. 그렇다면 어떤 혁신클러스터가 성공가능성이 높은 걸까. 혁신클러스터는 '네트워크' 형성에 달렸다고 한다. 특히 정부 연구소 대학 기업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자.네트워크는 서로 주고 받을 게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서도 시장경제 원리는 작용한다. 기업을 네트워크에 끌어넣기가 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덧붙여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혁신이란 무엇인가. '상업화'를 거쳐야만 비로소 혁신이다. 시장 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쯤 되면 답이 나온다.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혁신클러스터라면 성공가능성도 그만큼 높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눈길을 끄는 것은 기업도시다. 기업 스스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공급주도(supply push) 과학도시와 대비될 만하다. 따라서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교육 및 연구 인프라가 갖춰지고 여기에 규제완화,유연한 노동시장까지 더해지면 혁신클러스터로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쩌면 과학도시가 꿈꾸던 이상을 앞당겨 실현시켜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도시를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건설투자 효과에 큰 기대를 거는가하면 누구는 재벌자유도시를 만들자는 거냐며 비판한다. 수도권 충청권은 해당되니,안되니 하는걸 보면 정부와 기업간 동상이몽(同床異夢) 측면도 없지 않다. 어쨌든 기업도시가 아이디어로 끝나고 말지,산업단지나 산업사회의 그저 그런 또 하나 기업도시로 그칠지,아니면 혁신클러스터로 발전할지는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수준에 달린 문제같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