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3일 김선일씨 피살 보고를 받은지 8시간반 만에 바로 대국민담화를 발표, 이라크 무장단체의 테러에 대해 강경대응 입장을 피력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 일방적인 협상시한을 넘긴지 몇 시간 만에 김씨가 피살되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졌지만 테러를 통한 위협에는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전한 것이다. 또 관계당국에 대해서도 차제에 확실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테러는 반인륜적 범죄로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결코 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게 해선 안된다"며 파병을 방침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담화메시지는 이날 새벽 외교부에 상황이 보고된 직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먼저 가닥이 잡힌 내용이다. 새벽 2시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전보좌관 주재로 열린 NSC 상임위에서는 추가파병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유사한 테러가 발생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국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시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강력규탄 및 국제사회와의 공동보조 방침을 밝힌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반부패기관협의회 주재, 미 PBS방송 인터뷰 등 예정된 공식 행사를 모두 취소한 채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소집,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재차 확인하고 재발방지를 지시했다.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테러세력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명확히 밝혔지만 청와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외교부의 상황실을 '격려방문'한 뒤 불과 2시간여 만에 참수의 비보를 접하게 된 상황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전쟁국으로 파병을 하는 민감한 상황에서 필요한 대외 정보력은 확보하고 있는지, 위기시 협상능력은 제대로 발휘하는지에 대한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까지 안보와 관련된 '시스템 이상'을 거론하고 있어 청와대의 입장은 상당히 어렵게 됐다. 또 모처럼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어렵사리 가닥잡은 추가파병의 일정이 반대론에 부딪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이다. 청와대는 이라크 파병이 한ㆍ미 동맹관계의 결속력을 확인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아랍권과의 관계가 국제사회에서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도 정부의 부담이다. 아랍권은 석유의 주도입선이어서 외형적인 교역규모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