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충격'] (기업들 움직임) "태극마크 표시 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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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어떤 표지도 제거하라.'
23일 삼성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중동지역 주재원들에게 긴급 타전한 지침이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에서 볼 수 있듯 파병 시점이 다가올수록 한국인들이 중동 전역에서 이라크 무장세력이나 중동 테러집단의 타깃이 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이라크 재건 특수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던 자동차ㆍ전자ㆍ건설ㆍ플랜트ㆍ종합상사 업체들은 김선일씨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희망을 사실상 접어버렸다.
김씨의 참혹한 죽음도 큰 충격이지만 무엇보다 중동정세의 불안이 끝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너무도 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있다.
◆ 중동지역 출장금지
웬만한 대기업들은 이라크는 물론 중동지역 출장을 전면 금지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이라크에 주재원이나 출장자가 없는 상태이며 이라크에 대한 직접 출장은 결재해 주지 않고 있다.
이라크 영업을 관할하고 있는 요르단 암만에 3명의 한국 주재원이 있지만 작년부터 신변 안전 등을 고려해 이라크 출장을 금지시키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시리아 이란 등 이라크 인접국에 설립한 지점 주재원에 대해서는 특별히 귀국 명령을 내리지는 않고 현지에서 '비상체제'를 가동, 운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지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한편 현지 대사관들과 긴밀한 연락체계를 유지하며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라크를 출장 전면금지지역으로,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출장 자제지역으로 각각 지정했으며 출장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반드시 임원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한편 인천~두바이 노선을 주2회 운항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경우 23일 현지로 떠난 항공기에는 총 2백61개 좌석에 1백61명의 승객이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오는 26일 떠나는 항공편에는 1백47명의 예약승객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바이가 중동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소규모 무역업을 하는 '보따리 상인'들이 두바이를 통해 중동 전역을 오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 주재원 특별 행동요령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은 주재원들의 자동차에서 태극마크나 삼성로고를 떼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17명의 주재원 전원에게 단독행동을 금지하면서 휴대폰과 무전기를 지급해 비상연락체제를 갖추도록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긴급상황 발생시 즉각 피할 수 있도록 '오픈 항공권'과 여권을 항상 갖고 다니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건설회사를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안전강화를 위한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사업장 경비원 채용을 늘리는가 하면 장거리 이동시에는 현지 경찰에 약간의 현금을 제공하고서라도 호위를 부탁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두바이에 지사를 두고 있는 SK㈜는 현지 주재원 2명에게 가급적 외출을 자제토록 당부하면서 원유 도입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았다.
쿠웨이트에서 정유공장을 건설 중인 SK건설도 현지 8명의 주재원들에게 중동인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하지 말도록 했다.
또 대우인터내셔널은 중동지역 6개 지사에 근무 중인 직원 8명에게 낮 시간에만 활동하도록 전문을 보냈다.
현지 안전대책은 현지 지사장에게 완전히 일임해 필요할 경우 자체적으로 조치하도록 했다.
◆ 비상대응체제 가동
대우인터내셔널은 특히 중동지역 사태와 관련해 △주재원 가족 철수(1단계) △테러위험, 불매운동 가능성에 대한 대비(2단계) △테러피해 발생(3단계) 대책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따라 각 중동 지사들은 중요 계약서 보안 방안을 확보하고 예금 전액을 인출하는 등 비상체제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대종합상사는 테헤란(이란) 텔아비브(이스라엘) 두바이 이스탄불(터키) 등 중동 지사를 대상으로 본사와 24시간 수시연락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LG상사는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 중동지역 4개 지사에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보고에 앞서 먼저 조치를 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