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사건을 둘러싸고 정부의 피랍 인지 시점 등 각종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사실여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그런 주장들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씨 피랍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뒤는 그렇다 쳐도 그 전에 정부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인지,알았다면 무엇을 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우선 김씨가 지난 5월31일 피랍됐다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증언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김 사장이 피랍사실을 현지 대사관에 알리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석방교섭을 벌이면서 시간이 흘러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교민이 많지도 않은 지역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사관이 몰랐다고 하기엔 피랍 이후 20여일은 너무도 긴 시간이다. 더구나 이달초부터 김씨의 피랍 소문이 현지에서 돌았다고 하지 않는가. AP텔레비전뉴스(APTN)의 주장은 이같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김씨가 나오는 비디오테이프가 APTN에 배달돼 이달초 외교통상부에 김씨의 신원 등을 문의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때 정부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법 규정상 위험지역으로 떠나는 국민의 자유를 제약할 권리가 없다. 현지공관에 대한 소재지 신고도 의무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사태와 관련해 그동안 정부가 말해 왔던 교민대책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만약 어떤 경로로든 정부가 김씨 피랍 사실을 일찍 인지하고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듯 파병 등과 관련한 정책적 고려 때문에 김씨 피랍 사실을 고의로 숨겨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의혹이 제기된 이상 그냥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물론 정부의 주장대로 정말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정부의 대응 체계에 무슨 허점이 있길래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 의혹은 밝혀져야 할 것이고 그래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제2,제3의 테러만행을 방지할 수 있고,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붕괴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