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동운동이 실리위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삶의질 향상 차원에서 근로시간단축과 고용안정,임금인상등을 모두 요구하며 사용자를 압박하던 독일 노조가 이제 고용안정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독일 노조들은 고용안정만 보장된다면 임금인상없이도 근로시간연장에 합의하고 있으며 노동관련법에 보장된 경영참여도 회사경영에 걸림돌이 될 경우 포기하고 있다. 올 들어 가장 큰 변화는 근로시간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 독일 최대규모의 막강파워 금속연맹(IG메탈)노조는 올해 근로자의 50%까지(현행 18%)는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늘릴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별도의 노사협의를 거칠 경우 근로시간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지난해 동독지역에서 벌인 파업이 실패로 돌아갔던 충격 때문인지 금속노조가 올 들어 1백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급단체 금속노사의 근로시간연장 합의에 따라 개별사업장의 근무시간 연장도 줄을 잇고 있다. 물론 근무시간 연장에 따른 별도의 임금인상은 대부분 없다. 지멘스사의 경우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하면서 헝가리로 이전하려던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보장받았고 회사는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게 돼 노사 모두 이득을 본 셈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어도 오히려 임금인상을 바라는 한국의 노사현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또 다임러 크라이슬러사는 최근 4만명의 근로자 중 개발·계획부서 근로자 1만명에 대해 주40시간씩 근무시키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포르쉐사도 개발센터인력 3천명에 대해 주40시간 근무를 추진 중이다. 또한 노조는 기업의 경쟁력강화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2월16일 독일 금속노사는 기업경영이 어려울 경우 근로자 대표는 휴일과 연말보너스를 반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선 근로시간 연장뿐 아니라 임금삭감도 수용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여기에 법적으로 보장된 경영참여에도 노조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고유권한인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봐야 오히려 투자결정에 걸림돌만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폰 반겐하임 독일 금속사용자연합 국제협력담당국장은 "종업원평의회는 회사의 순수경영투자결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인사,징계 등에는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가 공존하기 위한 사회적 파트너십의 역할을 보여준 것이다. 노조의 변화는 경영환경 변화 때문이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노조의 요구만을 고집하다가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연합(EU) 출범으로 기업들의 자본이동이 쉬워지면서 저임금 국가로의 공장이동이 가속화될 것이란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많은 기업들은 임금이 싼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EU권으로의 공장이전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실증적 사례도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