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로 여행을 가 한 달 정도 산 적이 있다. 동네 초등학생과 바위구멍치기 낚시를 갔다. 뱀장어처럼 생긴 고기가 따라 올라왔다. 입이 붉었다. "뱀처럼 생긴 거 이게 무슨 고기냐?" "지레미요. 아저씨 그런데 뱀이 그렇게 생겼어요?" 울릉도에는 뱀이 살지 않아 뱀을 본 적 없는 아이가 내게 되물었다. 섬 아이를 데리고 몇 번 더 낚시를 다녔다. 아이는 고기를 잡아 놓고 뭍에서는 어떻게 부르냐고 자꾸 물었다. 얼룩덜룩 단청 색깔이 나며 겉이 미끄러운 '용필이'라 부르는 물고기를 각시노래미라 부른다고 답했을 뿐 아는 바가 없어 제대로 답해주지 못했다. 그때 내가 '자산어보'(정약전 지음,정문기 옮김,지식산업사)를 읽었다면 더 풍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조사·연구해 쓴 책이다. 책에는 여러 물고기류,조개류,해조류,게,새우들의 생김새와 방언,약으로 어떻게 쓰여지는가 등이 적혀 있다. 묘사력이 뛰어나 그림 없이도 물고기 모양을 쉽게 떠올릴 수 있고 표현력도 압권이어서 마치 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구어는 올챙이를 닮아 입이 매우 크다. 입을 열면 온통 빨갛다. 입술 끝에 두 개의 낚싯대 모양의 등지느러미가 있어 의사가 쓰는 침 같다. 낚싯대 끝에 낚싯줄이 있어 그 크기가 말꼬리와 같다. 실 끝에 하얀 미끼가 있어 밥알과 같다. 이것을 다른 물고기가 따먹으려고 와서 물면 잡아먹는다.' '숭어는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급하게 피해 달아난다. 맑은 물에서는 여지껏 낚시를 문 적이 없다. 그물에 걸려도 흙탕물에 엎드려 온 몸을 흙에 묻고 단지 한 눈으로 동정을 살핀다. 고기살의 맛이 좋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서 첫째로 꼽힌다.' 요즘 숭어회는 싼 회의 대표급으로 1㎏에 만원,만오천원 하는데 옛날에는 숭어를 수어(秀魚)라고 쓰기도 했다니… 상어는 껍질이 모래와 같다고 해서 그 이름을 사어(沙魚)라고 지었다고 한다. '자산어보'는 바닷가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낚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필독서 항목에 꼭 넣어야 할 책이다. 함민복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