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A씨는 최근 아파트 명의를 부인 앞으로 돌려놓았다. 내년부터 도입될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집단소송에 휘말려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을 경우 회계법인과 담당 공인회계사도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 있다"며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부인이나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넘기는 것은 공인회계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공인회계사들이 집단소송 공포에 떨고 있다. 집단소송이란 분식회계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과 담당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길 경우 소송을 내지 않은 피해자도 일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투자자 보호제도다. 일반 기업에 비해 '영세한' 회계법인과 공인회계사 입장에선 집단소송을 당할 경우 신뢰도 추락은 물론 '경제적 파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보험을 통해 위험을 회피할 수도 없다. 최근 한 회계법인은 집단소송에 대비한 보험 가입이 가능한지를 문의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집단소송에 따른 손해배상 금액이 얼마나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보험상품 설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보험회사의 답변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회계법인들은 자구책으로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있지만 천문학적 손해배상에 대비하기는 역부족이다.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회계법인의 손해배상 책임 한도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