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과 회고록은 한사람의 삶과 함께 그가 지나온 시대와 사회를 보여준다. 사전에서 보면 자서전은 '개인의 생애를 다룬 것'이고,회고록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것'이다. 자서전이 개인의 성장 과정과 삶의 편린을 나타낸다면,회고록은 특정시점에 발생했던 사건의 내막을 드러낸다. 유명인의 회고록은 따라서 일반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비밀스러운 게 많던 시절,해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된 일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이면 더하다. 한때 '김형욱 회고록'이 잘 팔리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이 관심을 모으는 건 그런 까닭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진정한 성찰이나 고발을 통해 자신을 과거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이라고 한다. 따라서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러워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자신의 것으로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단념해야'(이청준 '자서전들 쓰십시다') 한다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대부분 자기 입장을 변명하고 미화하기 일쑤다. 클린턴의 회고록 '나의 인생'을 두고 르윈스키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98년 당시 특별검사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을 보호하려 애썼는데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모든 건 르윈스키의 유혹에 따른 실수였다는 식으로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사후 상당기간이 지나 제3자에 의해 출간되는 전기(傳記)가 주변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당사자의 주관적 감정에 좌우된다. 특히 회고록을 집필할 때의 감정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가치관은 사건 당시와 달라지고 따라서 자가당착적 해석을 가할 수도 있다. 클린턴의 경우 회고록을 집필할 즈음엔 사랑은 가고 회한만 남았을지 모른다. 르윈스키의 주장처럼 당시엔 둘다 진실이었는지,르윈스키는 진실이었으나 클린턴은 단지 힘든 시절 빠지기 쉬운 방탕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르윈스키 입장에선 비겁해 보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랴.상황은 변했고,'사람이 타인의 재앙에 대해 느끼는 연민은 그 재앙의 양이 아니라 그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에 좌우된다'(루소)고 했으니.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