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이브 그레인저 미국 UC샌디에이고 대학 명예교수(계량경제학)는 "경제는 일정한 흐름을 타게 마련이며, 그런 흐름을 꺾는 급격한 정책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시장을 활성화시키는게 정책당국자들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단행한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미국보다는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나라들에 끼치는 심리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진단하고,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무역 및 재정수지) 적자로 인해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불가피할 것인만큼 각국의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연세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계량경제학회 극동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레인저 교수를 그의 제자이자 행사준비위원장인 유병삼 연세대 교수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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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삼 교수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경제가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만 이라크 사태와 고유가, 중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 등 불확실한 요인들이 잇따라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 회복세가 조만간 다시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 그레인저 교수 =고유가는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이라크 사태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주권은 이양됐지만 이라크 사태가 미국을 계속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갈지도 관심입니다.

최근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주춤거리고 있는데 중국이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잡으면서 성장세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 유 교수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우려된다는 뜻인가요.

△ 그레인저 교수 =중국은 세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하나는 과잉성장을 하다보니 그만큼 부작용에 노출돼 있다는 점입니다.

물가 급상승 등이 대표적인 예죠.

두번째는 고속성장이 갑자기 둔화될 때 발생하는 충격입니다.

과거 쿠바가 그랬습니다.

반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면 석유 고철 등의 세계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는 이점은 있습니다.

세번째는 이같은 문제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풀어가느냐 입니다.

중국정부는 일관되고 신뢰받을 수 있는 경제정책을 유지해야 합니다.

△ 유 교수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습니다.

이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지만 앞으로 미국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미국의 금리인상은 여전히 올 세계 경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미국의 경제성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 그레인저 교수 =미국의 금리인상은 경제적인 측면보다 심리적 측면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다른 국가들에 대한 영향이 클 것입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지만 미국의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오히려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금리를 내렸다고 생각해요.

다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약세를 보였던 달러가치가 높아져 미국은 수출부문에서 고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 유 교수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세계 경제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계속 커지면 위기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쌍둥이 적자로 인해 당장 미국 경제가 주저앉을 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 유 교수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경제적 변수 뿐 아니라 정치적 변수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변수들이 세계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예측이 어느 정도 정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정치적 변수들이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은 물론 정책 입안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정치적 변수가 일반소비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한국과 같은 규모가 작은 경제에서는 영향력이 더 클 수는 있겠지요.

세계 전체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변수들이 많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경제 예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 유 교수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구조조정의 모범생으로 평가받았으나,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거시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솔직히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금융부문이 취약하고 체질이 훨씬 더 강화돼야 하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금융부문의 개선 및 강화가 향후 경제 회복에 좋은 기반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서비스 산업과 제조업이 적절히 혼합해 성장하느냐 여부도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경제는 나름의 흐름을 갖게 마련인데, 이같은 흐름을 뒤흔드는 급격한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주체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세련된 경제정책 운용이 중요합니다.

△ 유 교수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고용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세계적으로 '고용없는 성장' 현상이 확산될 것으로 보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사용자들은 갈수록 고용이 재고 조정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재고물량을 많이 떠안기를 싫어하듯이 생산성이 높지 않은 근로자들을 거느리고 있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생산성 높은 소수 인력만으로도 충분히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고용이 비례해서 창출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유 교수 =한국에서는 각종 기관들이 내놓는 경제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들 경제예측 기관에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레인저 교수 =예측을 잘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돼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부실 예측기관과 우수 예측기관이 상존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게 현실입니다.

경제예측 기관들을 평가하고 평가내용을 발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합니다.

영국의 경우 언론 등이 매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유 교수 =갈수록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각국 정부는 경제정책을 어떻게 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사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세금 및 금리조정 등의 정책을 성급하게 동원했다가는 부작용을 낳기 십상입니다.

대신 제도나 법을 개선하는 방향을 선택하는게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도나 법을 바꿀 때도 공산주의 국가처럼 획일적인 방향으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불확실성속에서는 세계 최대 경제강국인 미국도 무기력하게 보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유 교수 =계량경제학은 경제학계내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량경제학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많습니다.

현대경제학에서 계량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한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레인저 교수 =경제이론은 기본적으로 현실적인 유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이론이 현실을 잘 설명하느냐는 데이터에 의해 검증돼야 한다는 얘기죠.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 정책효과의 방향만을 예측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효과의 크기가 얼마나 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금리를 올리더라도 얼마나 올려야 할 지 알 수 있습니다.

계량경제학은 이런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몇년전 브라질 열대우림을 벌목하는 사업에 계량경제학을 적용한 예가 있습니다.

벌목의 필요성과 벌목에 따른 영향 등과 관련해 두가지 정책이 제시됐습니다.

하나는 막연하게 감정이 개입된 정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계량경제 분석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책이 채택됐는지는 말 안해도 알 것입니다.

반면 경제란 매우 복잡하고 수량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무턱대고 계량경제 분석만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계량경제학은 경제정책 입안과 수립에 필수적이지만 단순한 기계적 분석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 유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서 세계 최고를 꿈꾸는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시지요.

△ 그레인저 교수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가지 이상의 인접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는게 연구 생산성을 높이고 흥미도 더 하게 됩니다.

다른 분야의 사고나 접근방식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연구에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김홍열ㆍ김동윤 기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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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브 그레인저 교수(70) >

<>1934년 영국 웨일스 출생
<>영국 노팅엄대 수학과 졸업, 통계학 박사
<>영국 학사원 교수
<>미국 서부경제학회 회장
<>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미국 UC샌디에이고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현재)

< 유병삼 교수(52) >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졸업
<>미국 UC샌디에이고대 경제학 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조교수
<>한국금융학회 이사
<>한국계량경제학회장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