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여름…중국 스케치] (1) 그래도 황푸江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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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黃浦)강은 이름과는 달리 짙은 갈색이다.
넘치는 수량에 유속도 빠르다.
도도하게 흐른다는 표현이 맞다.
끝내는 창장(長江)에 빨려들면서 남중국해의 머리를 적신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은 많다.
아니 강은 언제나 도시들을 관통한다.
황푸 강변에 접해 있는 초현대식 샹그릴라 호텔의 여행객을 깨우는 것은 자명종이 아니라 황푸강을 울리는 뱃고동 소리다.
대형 컨테이너를 만재한 화물선들이 새벽 안개 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살을 가른다.
바지선들이 밀려가고 여객선이 물길을 서두르는 살아 있는 강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할 때의 한강은 다만 서울의 별칭일 뿐이지만 황푸강은 그 자체가 중국의 막강한 물류 시스템이다.
황푸강을 보고서야 한강은 이미 고인 물이요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여행객의 절망을 키워간다.
인구 1천7백만명에 1인당 지역GDP(국내총생산)가 작년말 기준으로 5천6백달러를 넘어선 상하이다.
올들어서는 6천달러를 넘어섰다는 추정도 있다.
위안화가 절상된다면 그만큼 소득 수준을 더 올려 계산해야 한다.
상하이 사람들은 그들의 조국을 칭하면서 굳이 '신(新)중국'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닫힌 베이징, 열린 상하이'를 강조하는 어법은 황푸강을 기준으로 상하이시를 푸둥(浦東)과 푸시(浦西)로 나누는 이분법에도 녹아 있다.
푸둥 지구라는 이름을 내건 황푸강의 동쪽 신개발 지대는 면적만도 서울의 절반 정도다.
푸시 지구가 20세기의 여울목이었다면 푸둥은 21세기로 열린 도시다.
화둥사범대의 장융웨이 교수는 기자에게 푸둥을 둘러본 소감이 어떤지를 너무도 진지하게 물어왔다.
원자바오 총리의 금융긴축 선언 이후 중국 경제동향을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장 교수는 상하이에 대한 소감부터 물어온다.
"금융긴축은 일시적인 문제요, 개발 열기를 조금 식히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수사학적 역공이다.
푸둥 개발회사인 '루자쭈이'사에서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허훙 부장도 상하이시에 대한 인상을 조심스레 물어왔다.
루자쭈이사는 푸둥지구 인프라 개발 전문회사다.
이 회사는 상하이 개발을 거의 끝내고 주 사업장을 이미 동북방의 톈진으로 옮겨놓고 있다.
허 부장은 "푸둥은 70% 정도 개발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그들이 궁금한 그만큼이나 상하이는 보여주고 평가받기를 기다리는 도시다.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불렀다는 푸둥지역의 스카이라인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시카고의 그것과 닮아 있다.
상하이에서 만큼은 중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물론 선전이나 베이징에서도 마찬가지며, 항저우 쑤저우에서 보는 중국도 개도국이 아니다.
1인당 평균소득이 5천달러대라는 것일 뿐, 상하이의 중산층 살림살이가 서울보다 풍족하다는 것은 도시 외양만으로도 금세 드러난다.
교통체증을 견뎌내는 거리의 차들은 고급 폭스바겐이며, 혼다며, 현대의 쏘나타다.
웬만한 도시 중산층에선 40인치급 평면TV를 집마다 갖추고 있다.
메릴린치는 한국의 백만장자를 6만여명, 중국의 백만장자를 26만여명으로 추산했다.
그 중 상당수가 상하이 시민이다.
명목소득만으로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기만이요, 착각이다.
그래서 중국의 긴축정책을 스케치하는 것도 그것이 상하이에서라면 결코 쉽지 않다.
도시에도 풍수가 있다.
19세기 아편전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열강의 조차지 상하이가 재부상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영국의 홍콩상하이 뱅크(HSBC)가 80여년 전인 1923년 본점을 틀었던 건물이 지금은 상하이발전은행의 본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상하이는 돌아와 있다.
"홍콩 시대는 이미 끝났다. 서울은 국가 기반이 너무 협소하다. 아마도 도쿄가 상하이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허홍 부장은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도시는 이렇게 자기의 우승열패를 만들고 있다.
그마저도 지방으로 내려갈 한국의 수도라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은 상하이시의 한 골목길에서 비밀 창당대회를 열었다.
청년 마오쩌둥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경찰이 들이닥친다는 급보를 전해듣고 뿔뿔이 다음 집결지를 향해 도피해 갔던 혁명가들의 열정이 숨을 죽였던 골목길은 지금 '신천지(新天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천지개벽되었다는 상하이에서조차 다시 별천지라고 불리는 '신천지'를 거닐면서 더이상 낡은 중국을 논할수는 없다.
혁명가들이 숨을 죽이며 찾아들었던 골목길이 지금은 신중국인들로 어깨를 부딪친다.
그래서 더욱 당혹감을 안기는 도시가 상하이다.
그래도 시비를 걸어보지 않을 수는 없다.
상하이는 일종의 견본도시며 잘 치장한 무대요, 쇼윈도가 아닌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전면만 있는, 하나의 포템킨 빌리지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부동산은 거대한 거품의 성이며 88층짜리 진마오 빌딩을 비롯한 마천루들은 긴축경제와 더불어 홍콩 투기자본들의 바벨탑이 되고 말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도 던져 봄직하다.
섭섭하게도 한때 70~80%에 달한다던 마천루의 공실률은 지금은 오히려 사실상 '제로(0)'로 떨어져 있다.
긴축 경제를 느끼기 위해서는 상하이가 아니라 외곽도시들로 나가야 할 듯하다.
아마도 외곽에서라면 멈추어선 기계들과 짓다만 공장들, 무분별한 난개발의 부작용들이 널려 있을 것이고 또 그랬다.
상하이의 긴축은 곧 에너지의 문제이며, 질주하는 경제에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거할 뿐이다.
상하이시는 지난 3월 1차로 4백개 기업을 골라 전력을 제한 공급하고 있다.
2단계 절전, 3단계 절전도 이미 일정을 확정해 놓고 있다.
비록 중국의 쇼윈도라지만 밤 11시면 고층빌딩들을 빛내던 화려한 조명들이 일제히 소등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풍경이다.
'전 인민이 단결하여 2008 올림픽과 2010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자'는 초대형 네온사인도 밤 10시반을 넘기면서는 조용히 불을 껐다.
중국 경제는 분명 숨을 고르는 시각으로 들어섰다.
정규재 부국장 jkj@hankyung.com
넘치는 수량에 유속도 빠르다.
도도하게 흐른다는 표현이 맞다.
끝내는 창장(長江)에 빨려들면서 남중국해의 머리를 적신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은 많다.
아니 강은 언제나 도시들을 관통한다.
황푸 강변에 접해 있는 초현대식 샹그릴라 호텔의 여행객을 깨우는 것은 자명종이 아니라 황푸강을 울리는 뱃고동 소리다.
대형 컨테이너를 만재한 화물선들이 새벽 안개 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살을 가른다.
바지선들이 밀려가고 여객선이 물길을 서두르는 살아 있는 강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할 때의 한강은 다만 서울의 별칭일 뿐이지만 황푸강은 그 자체가 중국의 막강한 물류 시스템이다.
황푸강을 보고서야 한강은 이미 고인 물이요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여행객의 절망을 키워간다.
인구 1천7백만명에 1인당 지역GDP(국내총생산)가 작년말 기준으로 5천6백달러를 넘어선 상하이다.
올들어서는 6천달러를 넘어섰다는 추정도 있다.
위안화가 절상된다면 그만큼 소득 수준을 더 올려 계산해야 한다.
상하이 사람들은 그들의 조국을 칭하면서 굳이 '신(新)중국'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닫힌 베이징, 열린 상하이'를 강조하는 어법은 황푸강을 기준으로 상하이시를 푸둥(浦東)과 푸시(浦西)로 나누는 이분법에도 녹아 있다.
푸둥 지구라는 이름을 내건 황푸강의 동쪽 신개발 지대는 면적만도 서울의 절반 정도다.
푸시 지구가 20세기의 여울목이었다면 푸둥은 21세기로 열린 도시다.
화둥사범대의 장융웨이 교수는 기자에게 푸둥을 둘러본 소감이 어떤지를 너무도 진지하게 물어왔다.
원자바오 총리의 금융긴축 선언 이후 중국 경제동향을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장 교수는 상하이에 대한 소감부터 물어온다.
"금융긴축은 일시적인 문제요, 개발 열기를 조금 식히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수사학적 역공이다.
푸둥 개발회사인 '루자쭈이'사에서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허훙 부장도 상하이시에 대한 인상을 조심스레 물어왔다.
루자쭈이사는 푸둥지구 인프라 개발 전문회사다.
이 회사는 상하이 개발을 거의 끝내고 주 사업장을 이미 동북방의 톈진으로 옮겨놓고 있다.
허 부장은 "푸둥은 70% 정도 개발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그들이 궁금한 그만큼이나 상하이는 보여주고 평가받기를 기다리는 도시다.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불렀다는 푸둥지역의 스카이라인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시카고의 그것과 닮아 있다.
상하이에서 만큼은 중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물론 선전이나 베이징에서도 마찬가지며, 항저우 쑤저우에서 보는 중국도 개도국이 아니다.
1인당 평균소득이 5천달러대라는 것일 뿐, 상하이의 중산층 살림살이가 서울보다 풍족하다는 것은 도시 외양만으로도 금세 드러난다.
교통체증을 견뎌내는 거리의 차들은 고급 폭스바겐이며, 혼다며, 현대의 쏘나타다.
웬만한 도시 중산층에선 40인치급 평면TV를 집마다 갖추고 있다.
메릴린치는 한국의 백만장자를 6만여명, 중국의 백만장자를 26만여명으로 추산했다.
그 중 상당수가 상하이 시민이다.
명목소득만으로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기만이요, 착각이다.
그래서 중국의 긴축정책을 스케치하는 것도 그것이 상하이에서라면 결코 쉽지 않다.
도시에도 풍수가 있다.
19세기 아편전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열강의 조차지 상하이가 재부상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영국의 홍콩상하이 뱅크(HSBC)가 80여년 전인 1923년 본점을 틀었던 건물이 지금은 상하이발전은행의 본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상하이는 돌아와 있다.
"홍콩 시대는 이미 끝났다. 서울은 국가 기반이 너무 협소하다. 아마도 도쿄가 상하이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허홍 부장은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도시는 이렇게 자기의 우승열패를 만들고 있다.
그마저도 지방으로 내려갈 한국의 수도라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은 상하이시의 한 골목길에서 비밀 창당대회를 열었다.
청년 마오쩌둥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경찰이 들이닥친다는 급보를 전해듣고 뿔뿔이 다음 집결지를 향해 도피해 갔던 혁명가들의 열정이 숨을 죽였던 골목길은 지금 '신천지(新天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천지개벽되었다는 상하이에서조차 다시 별천지라고 불리는 '신천지'를 거닐면서 더이상 낡은 중국을 논할수는 없다.
혁명가들이 숨을 죽이며 찾아들었던 골목길이 지금은 신중국인들로 어깨를 부딪친다.
그래서 더욱 당혹감을 안기는 도시가 상하이다.
그래도 시비를 걸어보지 않을 수는 없다.
상하이는 일종의 견본도시며 잘 치장한 무대요, 쇼윈도가 아닌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전면만 있는, 하나의 포템킨 빌리지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부동산은 거대한 거품의 성이며 88층짜리 진마오 빌딩을 비롯한 마천루들은 긴축경제와 더불어 홍콩 투기자본들의 바벨탑이 되고 말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도 던져 봄직하다.
섭섭하게도 한때 70~80%에 달한다던 마천루의 공실률은 지금은 오히려 사실상 '제로(0)'로 떨어져 있다.
긴축 경제를 느끼기 위해서는 상하이가 아니라 외곽도시들로 나가야 할 듯하다.
아마도 외곽에서라면 멈추어선 기계들과 짓다만 공장들, 무분별한 난개발의 부작용들이 널려 있을 것이고 또 그랬다.
상하이의 긴축은 곧 에너지의 문제이며, 질주하는 경제에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거할 뿐이다.
상하이시는 지난 3월 1차로 4백개 기업을 골라 전력을 제한 공급하고 있다.
2단계 절전, 3단계 절전도 이미 일정을 확정해 놓고 있다.
비록 중국의 쇼윈도라지만 밤 11시면 고층빌딩들을 빛내던 화려한 조명들이 일제히 소등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풍경이다.
'전 인민이 단결하여 2008 올림픽과 2010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자'는 초대형 네온사인도 밤 10시반을 넘기면서는 조용히 불을 껐다.
중국 경제는 분명 숨을 고르는 시각으로 들어섰다.
정규재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