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비비안 리와 함께 열연하며 보여준 동물적인 야성,'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현대인의 고독을 처절하게 그린 연기,'워터 프론트'에서의 의로운 권투선수 이미지,'대부'에서 돈 콜레오네역을 맡아 어눌한 말투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카리스마의 전형.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이들 영화의 주인공 말론 브랜도가 지난 1일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에서 8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최고의 남자배우로 꼽혀온 그에게는 '할리우드의 반항아' '터프 가이' '타고 난 연기자' '고독한 은둔자' 등 따라 붙는 수식어가 다양하다.

이는 곧 연기력과 섹시함을 겸비한 브랜도의 인생역정이기도 하다.

브랜도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무명시절이 짧았다.

배우였던 어머니의 '끼'를 이어 받았는지,당시 뉴욕에서 배우양성가로 이름을 떨쳤던 스텔라 애들러는 "브랜도는 배울 필요도 없는 천부적인 배우"라며 "브랜도가 연기하지 못할 역은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그의 카리스마를 한껏 높여주는 매부리코는 제대 후 돈을 벌기 위해 뒷골목에서 벌이는 로데오 경기에 참가했다가 코가 부러지는 사고로 생겼다고 한다.

중년에 접어든 브랜도는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면서 3명의 부인을 맞아 1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양육권분쟁에 시달리는가 하면 배다른 아들이 자신의 딸의 남자친구를 살해해 거액의 소송비를 대느라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그가 실토했듯 폭식과 섹스에 탐닉했고 기행을 일삼아 수많은 가십거리를 만들었다.

'줄리어스 시저'의 출연료를 받아서는 섬을 사들여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랜도는 시민운동에도 발벗고 나섰다.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는 인디언 출신 여배우를 대신 보내 인디언 권익을 위한 연설을 하도록 한 일화는 유명하다.

브랜도는 위대한 사상가와 문학가에 견주며 "배우는 아무나 할수 있는 하찮은 존재"라고 얘기하곤 했지만,그의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수 없다. 성공한 영화인생의 뒤안길에서 겪은 고초가 엄청났다는 브랜도의 고백은 은막의 화려함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