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가 남파간첩.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의 사상전향 거부를 `민주화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인정,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이 사건 조사를 의문사위에 진정한 생존 장기수들은 "결정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72).기세문(71)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사상전향 거부는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로 의문사위 결정은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한 것"이라며 "강제로 전향서를 쓴 장기수에 대한 북송도 즉각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1933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박씨는 1959년 남파돼 같은해 간첩 혐의로 붙잡힌뒤 1994년 가석방될 때까지 35년간 복역했고, 1934년 전남 광주 출생인 기씨는 1971년 통혁당 사건 당시 호남지역 총책을 맡은 혐의(당시 반공법 위반)로 붙잡혀 15년간 복역했으며, 각각 `손윤규 사건'과 `최석기.박융서 사건'의 조사를 의문사위에진정했다.

다음은 이들과의 문답.

-- 의문사위의 민주화인정을 어떻게 생각하나.

▲(박종린.기세문) 정당한 결정이다.
당시 정부의 강요행위는 한 인간의 생존과자존에 대한 위협이었던만큼 항거는 더욱 치열했고 사상,이념에 따라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차원을 초월해서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였다.
의문사법 시행령에도 민주주의를 폭넓게 해석하라는 취지가 담겨있다.
사상전향의 강요는 민주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에 저항한 것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지 않나.

-- 의문사위 결정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종린)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행위'라고 반발하는 데 씁쓸하다.복역 이전의 행위는 이미 교도소에서 벌받지 않았나.독재가 강요한 것에 대한 항거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 의문사위가 정부에 장기수의 추가 북송(北送) 권고를 추진 중인데.

▲(박종린) 1차 송환때 못간 비전향 장기수도 있고 전향자도 전향했다는 이유로못갔다.북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정보를 몰라 신청을 못했거나 통보는 받았지만 개인적 문제(가정사)를 처리할 시간이 없어 못간 비전향 장기수가 있다.

전향자의 경우 대부분 강요에 못이겨 전향했음에도 전향했다는 이유로 북송이 불허됐다. 인간으로서 참기힘든 고문을 자행하고 지장을 찍게 만드는 전향이 불허의 근거였다.

북송희망자 28명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절한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정부는 `보낼 사람이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 이는 6.15 공동선언 정신에도 위배된다.

-- 북송 희망자는 사상적 이유가 큰가, 귀향의 이유가 큰가.

▲(박종린) 둘 중 어느 하나라 규정하기 힘들다.둘 다 마음에 두고 있다.
사상의 문제도 이제까지 살아 남으면서 버텨 온 이유중 하나이고, 피붙이를 찾고 싶다는근원적인 소망도 무시해선 안되는 것이다. 물론 연고도 없고 가족도 없으나 사상적 고향을 찾아 북송을 원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김병조기자 jamin74@yna.co.kr cim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