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하클레스.'

'독일에서 날아온 헤라클레스'

오토 레하겔(65) 감독이 그리스의 '유로 오디세이'를 신화로 집대성했다.

유럽축구사에 획을 긋는 대사건이자 현대축구 150년사의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될 그리스의 유로2004 우승을 이끈 레하겔 감독은 반세기를 변방에서 숨어지낸 아킬레스의 후예들을 유럽대륙의 정상에 우뚝 세우며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랐다.

'레하겔 신드롬'은 그리스의 영웅을 뛰어넘어 유럽 전역을 들끓게 하고 있고 그의 조국 독일에서는 로타르 마테우스와 루디 푀일러 전 감독까지 나서 "2006독일월드컵 이전에 그를 모셔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와 유럽 축구 모두에 가장 환상적인 날이다. 우리는 지금신처럼 추앙받기에 충분하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지구촌은 방금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 목도했다"면서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었던 이변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레하겔 감독은 81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베르더 브레멘 지휘봉을 잡아 리그 타이틀과 독일컵, UEFA컵위너스텁 등 숱한 우승을 일궈내 '오토대제'로 불렸지만환갑을 훌쩍 넘길 때까지 세계적인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물 간 전술이라는 스위퍼 시스템에다 포백(4-back)과 파이브백(5-back)을 혼용하는 수비 위주 전략으로 '구식'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던 레하겔 감독은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우승 후보들을 차례로 만나는 최악의 대진 속에서도 기적같은 우승을일궈내 '이기는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르투갈을 개막전과 결승에서 연달아 제압하고 8강, 4강전에서 프랑스, 체코를무너뜨린 원동력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물샐틈없는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잔뜩 웅크렸다 펼치는 역습과 세트플레이에서 한방을 노리는 '원초적 전략'이었다.

특히 레하겔 감독의 성공 신화는 붙박이 주전으로 뛰는 유럽 빅 리그 선수가 한명도 없는 무명의 팀원들을 개별 경쟁력에서도 밀리지 않는 유로 전사로 키워낸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더욱 빛났다.

92년 덴마크가 앙리 들로네에 키스했을 때에도 변방 반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라우드럽 형제가 버티고 있었고 76년 체코의 우승 당시에도 안토닌 파넨카라는 빅 스타가 있었다.

그리스 주장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는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힘, 그리스의 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레하겔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자신이 즐겨 부르는 독일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삼을 만큼 다정한 면도 있지만 훈련 시간에는 '90분 간쉼없이 뛰지 못할 선수는 당장 팀을 떠나라'며 혹독한 '독사'로 변신했다.

2002한일월드컵 예선에서 핀란드에 1-5로 대패를 당하며 거스 히딩크 감독이 초창기 한국 감독을 맡았을 때와 비슷하게 출발했으나 미미한 시작을 위대한 결말로바꾼 '그리스판 히딩크' 레하겔.

그가 그리스에 남든, 조국으로 가든, 아니면 제3의 팀을 선택하든 칠순을 바라보는 노장 사령탑의 지휘봉에서 또하나의 우승 신화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