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6일 농성장소를 경기도 여주 소재 한국노총 연수원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한미파업 사태는 '초장기전' 국면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노사 양측은 파업 12일이 지나도록 좀체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협상의 남은 쟁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 이동 배경은

노조측은 △정부의 공권력 투입이 예상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하고 △파업을 장기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농성 장소를 본점에서 여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정주 금융산업노조 교육선전본부장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2천4백여명 가운데는 임산부가 20명 정도 포함돼 있는데다 여성 조합원도 많다"며 "서울 중구 다동 소재 본점의 경우 입지여건 등이 매우 열악해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자칫 대형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협상이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파업을 '장기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노조 집행부의 포석도 깔려 있다.

실제로 "일찍 끝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파업이 길어지자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미은행 박진회 부행장은 "노조의 여주 이동은 파업의 장기화를 의미한다"며 "지난 5일 노조원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 남은 쟁점 무엇인가

한미은행 노사 양측은 현재 "협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협상 쟁점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과 노조 양쪽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파업이 시작될 때 노조에서 내밀었던 38개 요구사안 가운데 현재는 16개 정도만 남은 상황이다.

이 중 △상장폐지 철회 △독립경영 △국부유출 등 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사안 등을 제외하면 △임금 8.7%인상 △자동호봉 승급제 도입 △사무직군 폐지 △전산센터 한국 유지 △비정규직 고용여건 개선 등이 주요 쟁점이다.

특히 정규직 가운데 일반직에 비해 임금이 낮은 사무직군의 폐지와 인사고과 때문에 승진을 못하더라도 때가 되면 호봉이 자동으로 올라가 임금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 호봉자동승급제의 도입이 노조의 핵심 요구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 노사 양측 입장

이같은 쟁점에 대해 은행측은 "경영권, 특히 인사권과 관련된 사항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 역시 "38개 쟁점사안을 16개까지 줄여 나간 것도 순전히 노조의 자발적인 의지 때문이었지 사측이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실무협상과는 별개로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하영구 한미은행장과 서민호 노조위원장이 서울 시내 모처에서 대표협상을 계속 진행 중이어서 극적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