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방패 만드는 사람, 창 만드는 사람 ..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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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인종에 따라,민족에 따라,직업에 따라,생각에 따라 수없이 많다.
요즘은 진보냐 보수냐 개혁적이냐 반개혁적이냐 하는 것이 유행하는 분류법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방패를 만드는 사람과 창을 만드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누어서 판단하곤 한다.
방패를 만드는 사람도 창을 만드는 사람도 다 무기(武器)를 만든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마음의 씀씀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창을 만드는 사람은 이 창이 날카롭지 못해 상대를 해(害)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만들고,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이 방패가 튼튼해서 주인의 몸을 잘 지켜주기를 바라며 만든다.
그러니 어찌 같은 무기를 만들어도 그 마음이 같다 할 것이며,어찌 그 덕(德)이 같다 하겠는가?
나는 좋은 사회란 방패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옷을 만드는 사람은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추위를 이겨 건강하고 자신의 일을 잘하길 빌면서 만들고,신을 만드는 사람은 이 신을 신는 사람이 발이 편해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잘되기를 빌면서 만들고,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 음식을 먹는 사람이 더욱 건강해져서 소원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만들어야 좋은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방패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인데 최근 전국을 들쑤셔 놓았던 불량만두 사건에서 보듯 사람의 심법(心法)들이 같지가 않다.
어찌 나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낳겠는가? 콩을 심고 팥 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이다.
여담이지만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이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정치적 문제에선 진보적이나 다른 문제에선 보수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괜히 어떤 소속감에서 울타리를 만들어 목청을 높이는 일들도 수시로 보인다.
정말 마음이 문제지 그런 논쟁들이 진짜로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어떤 사람은 이 나라 수도 서울을 하느님께 바치고,또 다른 정치인은 이를 핑계 삼아 천도(遷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모두 그 잘난 말자랑들이지 국민을 위해서 하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본질은 내팽개치고 말꼬리들을 서로 붙잡고 처음 우리가 왜 이 문제를 거론했는지조차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이들 모두 창을 만드는 사람이지 방패를 만드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또 요즘 파병(派兵)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 갑자기 우리나라가 그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나는 지금 이 난제(難題)를 푸는 방식이 단순히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의 논리이기보다는 진정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대해 어떤 마음씀이냐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방패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씀이냐,창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씀이냐를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라 생각한다.
창과 방패 이야기를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난세편(難世篇)에 있는 고사(故事)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초(楚)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하기로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하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라크 사태를 보며 미국의 태도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의 모습을 본다.
아니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뱃속에는 칼을 지닌(구밀복검:口密腹劍) 사람들이 아닌가 자꾸 의심이 든다.
정의(正義)를 위해서 총을 들었다는데 총소리만 들리지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헝클어졌다.
모순(矛盾)이다.
인종에 따라,민족에 따라,직업에 따라,생각에 따라 수없이 많다.
요즘은 진보냐 보수냐 개혁적이냐 반개혁적이냐 하는 것이 유행하는 분류법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방패를 만드는 사람과 창을 만드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누어서 판단하곤 한다.
방패를 만드는 사람도 창을 만드는 사람도 다 무기(武器)를 만든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마음의 씀씀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창을 만드는 사람은 이 창이 날카롭지 못해 상대를 해(害)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만들고,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이 방패가 튼튼해서 주인의 몸을 잘 지켜주기를 바라며 만든다.
그러니 어찌 같은 무기를 만들어도 그 마음이 같다 할 것이며,어찌 그 덕(德)이 같다 하겠는가?
나는 좋은 사회란 방패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옷을 만드는 사람은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추위를 이겨 건강하고 자신의 일을 잘하길 빌면서 만들고,신을 만드는 사람은 이 신을 신는 사람이 발이 편해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잘되기를 빌면서 만들고,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 음식을 먹는 사람이 더욱 건강해져서 소원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만들어야 좋은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방패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인데 최근 전국을 들쑤셔 놓았던 불량만두 사건에서 보듯 사람의 심법(心法)들이 같지가 않다.
어찌 나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낳겠는가? 콩을 심고 팥 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이다.
여담이지만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이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정치적 문제에선 진보적이나 다른 문제에선 보수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괜히 어떤 소속감에서 울타리를 만들어 목청을 높이는 일들도 수시로 보인다.
정말 마음이 문제지 그런 논쟁들이 진짜로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어떤 사람은 이 나라 수도 서울을 하느님께 바치고,또 다른 정치인은 이를 핑계 삼아 천도(遷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모두 그 잘난 말자랑들이지 국민을 위해서 하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본질은 내팽개치고 말꼬리들을 서로 붙잡고 처음 우리가 왜 이 문제를 거론했는지조차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이들 모두 창을 만드는 사람이지 방패를 만드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또 요즘 파병(派兵)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 갑자기 우리나라가 그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나는 지금 이 난제(難題)를 푸는 방식이 단순히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의 논리이기보다는 진정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대해 어떤 마음씀이냐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방패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씀이냐,창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씀이냐를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라 생각한다.
창과 방패 이야기를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난세편(難世篇)에 있는 고사(故事)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초(楚)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하기로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하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라크 사태를 보며 미국의 태도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의 모습을 본다.
아니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뱃속에는 칼을 지닌(구밀복검:口密腹劍) 사람들이 아닌가 자꾸 의심이 든다.
정의(正義)를 위해서 총을 들었다는데 총소리만 들리지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헝클어졌다.
모순(矛盾)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