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도 1년6개월이 다돼간다.

노 대통령에게는 이 기간이 어느 대통령보다 길고도 짧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굳이 '위기론'이 제기되는 현 경제상황을 들추지 않더라도 '노-노믹스(Ro-nomics)'를 구현하기 위해 '실무자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많은 정책이 쏟아진 점을 감안하면 긴 기간이었다.

물론 1년 6개월도 안되는 짧은 시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는 일은 성급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 시점이 우리 경제의 장래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에 대한 시비(是非)는 적절하다.

현 정부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일시적으로나마 경기가 좋아지는 '출범 효과'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자주 지적하듯이 정부는 열심히 하는데 국민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문제일 수 있고,국민 입장에서는 믿고 따라줄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의 탓도 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이런 상황에 처해 흔히 범하기 쉬운 세가지 유혹에 빠지는가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

첫째,'뭔가 바꿔봐야 하지 않겠느냐'하는 유혹이다.

사람도 그럴 것이고 정책도 그럴 것이다.

물론 선택한 사람과 정책이라도 잘못됐을 경우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는 인선이나 정책결정은 사전에 충분한 검증이나 국민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이 점에 약점을 갖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잦은 인선과 정책교체는 오히려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우려가 있다.

"나 정도밖에 안되는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관이 '통일'이니 '복지'니 외쳐본들 국민들이 믿고 따르겠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둘째,'뭔가 드러내 보고' 싶은 유혹이다.

이것은 대체로 조급성에서 비롯되는데 최근처럼 현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평가해 주지 않을 때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연히 비용과 고통이 따르는 정책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나면서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모든 정책은 효과를 보기까지는 시차와 비용이 든다.

그러므로 너무 조급해하거나 들어가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정책혼선이 일어난다.

대통령과 경제각료들은 국민들과 겉돌게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과거 정부를 보면 자명하다.

셋째,'이제 됐구나'하는 유혹이다.

이것은 독선과 자만을 불러일으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일을 쉽게 생각한다.

정책에 대한 비판기능을 멀리한다.

대통령은 측근만 의존하게 되고 경제각료들은 소신보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만 관심을 둔다.

이제 노 대통령과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과 기업에 전가하는 일을 마무리하고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에 자라잡고 있는 거품을 제거해 혁신을 이룩해 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힘'이 있는 초기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만약 현 시점에서 위기나 비판에 대한 면역이 생길 경우 경제혁신에 따른 고통이 워낙 크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의 저항만 커지게 된다.

그 결과 현 정부가 출범초에 계획했던 모든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유혹은 위험하다.

정도에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국민에게 약속했던 마음가짐을 임기가 다할 때까지 유지해 주길 기원해 본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