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랫사람인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희생양으로 삼아라.그리고 일체의 범행을 부인하는 오리발 전략으로 가라."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피치를 올리면서 최근 잇따라 기소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나는 아니야(It wasn't me)'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기업회계라는 복잡한 속성상 CEO가 일관되게 부인할 경우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이같은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 기소된 에너지 재벌 엔론의 창업자인 케네스 레이 전 회장 겸 CEO도 CFO였던 앤드류 파스토우가 자신의 믿음을 배반했다고 비난하면서 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기소된 통신회사 월드컴(현 MCI)의 전 CEO 버나드 에버스도 CFO였던 스콧 설리번에게 모든 죄을 뒤집어 씌울 계획이다.

법원 심리를 앞둔 의료회사 헬스사우스의 리처드 스크루시 회장 겸 CEO는 CFO였던 윌리엄 오웬스와 웨스튼 스미스 등 아랫사람들이 회계범죄를 주도했다는 점을 집요하게 주장,증권거래위원회의 자산 동결시도를 무력화시켰다.

세계 최대 호텔 프랜차이즈인 센던트의 월터 포브스 회장도 유죄를 인정한 코스모 코리글리아노 CFO 등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는 계산이다.

CEO들은 수없이 많은 기업결정 사항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강조할 경우 무죄가 인정될 것으로 기대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부인을 뒤집을 만한 구체적인 증거 발견이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러나 CEO들이 회계부정을 위해 아랫사람들과 공모했다는 혐의가 e메일 등을 통해 확인되는 경우도 있는 데다 CEO의 책임론을 강조하는 배심원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아니야' 전략은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인 전략으로 일관해온 케이블 TV 회사인 아델피아 커뮤니케이션스의 창업자 존 리거스 회장은 지난주 유죄가 선언됐고,경매회사 소더비의 알프레드 토브만 회장도 구속됐다.

특히 회계감독을 강화한 사베인스-옥슬리법에서 회계장부에 CFO는 물론 CEO의 자필서명까지 의무화함으로써 CEO들이 혐의를 일방적으로 부인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