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때 '내 탓이오'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만사가 끝난 뒤 하게 되면 회한 서린 탄식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구호가 됐을 리 없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 게다.

이 때에는 남보다 자신을 먼저 성찰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역할을 보다 더 잘해보겠다는 다짐의 뜻도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같이 잘해보자고 청하는 의미도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번영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녀야 할 자세이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덕목을 조용히 실천하는 이들이 설마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매스컴에 오르는 굵직한 뉴스들은 이와는 동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극단에 가까운 이기주의의 표출, 논리가 결여된 억지주장, 법질서의 무시 등 혼돈의 정도는 아무리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오천년이라는 긴 세월에서 6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겨우 기지개를 켠 우리 경제는 한동안 전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초고속 성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근래의 10년가량은 1인당 소득 1만달러라는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작년에는 기대를 훨씬 초과하는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당초에 목표로 삼았던 5%에 크게 못미치는 3.1%에 머무르고 말았다.

올초에는 본격적인 세계경기의 회복이 예상됨에 따라 지속적인 수출 호조가 예상되고 이에 힘입어 내수가 살아나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 기대됐다.

그러나 내수의 회복은 지지부진하고 급기야 한국은행을 비롯한 예측기관은 하반기 경제전망을 하향조정하고 있다.

일부 기관은 올해 성장이 4%대에 그칠 뿐 아니라 경제가 다시 침체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IMF의 금년도 세계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4.6%임에 비추어 보면 우리경제는 세계 평균수준 정도의 성장이 예측되고 있는 셈이다.

이 것은 성장 추세 속에서 단기적으로 겪는 불황의 형태가 아니다.

추세 자체가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경제위기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문제의 실체는 장기추세가 주저앉고 있다는 점이고 이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긴축조치에도 불구하고 8% 중반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보이고 일본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러니 이대로 가면 우리는 뒤늦게 '내 탓이오'하고 후대에게 고개를 떨구게 될 조짐이 농후하다.

추세가 주저앉고 있는 이유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장기화된 경제를 둘러싼 사회·정치질서의 혼돈이다.

경제를 둘러싼 환경의 불안은 커다란 불확실성이 되어 경제를 억누르게 된다.

길거리가 불안하면 외출을 삼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좀더 과장하자면 수시로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하는 장소에서 물건을 사고 팔기 어려운 것과도 유사하다.

그렇기에 안정된 정치·사회질서의 유지는 경제적 번영에 있어 필수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경제를 둘러싼 질서의 혼돈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는 감이 있다.

고심해서 만들어낸 각종 경제정책들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저변의 한 구석에도 이것이 도사리고 있다.

안정된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내 탓이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근시안적인 내 몫 챙기기에 앞서 한사람 한사람이 전체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지도자의 안목과 역할도 더없이 중요하다.

지도자가 별것인가.

한마디 말이 여러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일 수 있다.

다만 진정한 지도자는 나라 전체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마땅하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추종세력을 설득하기도 해야한다.

'내 탓이오'의 마음이 일도록 하는 일이다.

추종세력이 '네 탓이오'만을 외치게 하는 지도자는 두목은 될지언정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bsyo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