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柳永洙 <송도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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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혁신 클러스터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클러스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지역이 과수원이었다.
그러나 불과 30년여만에 세계 최고의 첨단산업단지로 도약했다.
실리콘밸리에는 IT(정보기술)와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이 한 곳에 집중돼 있어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연구개발과 제품 생산을 마무리할 수 있고 마케팅을 포함한 지원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일례로 반도체 칩이나 센서의 시제품을 만들려면 소위 '크롬 마스크'가 필요한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컴퓨터로 디자인한 파일을 마스크 하청업체에 보내면 불과 2∼3일만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들도 우수한 전문하청업체와 각종 첨단시설을 활용해 손쉽게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다.
또 양질의 전문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다.
실리콘밸리에는 사업화를 지도해줄 컨설턴트와 비즈니스 전략가,회사 설립후 상장까지 도와주는 회계법인과 법률가들이 즐비하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정부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강한 자생력을 갖고 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불경기때라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정부로부터 교통 등 인프라 개선이나 제도(세제 인센티브) 개선만을 바랄 뿐이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당연히 정부의 간섭을 받게 되고 수많은 보고서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급변하는 IT산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대비했던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혜안도 빼놓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인종차별도 적었다.
학위,출신학교,가문보다는 성공한 사람이 존경받았다.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1931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마운틴뷰'일대의 광활한 토지를 구입,단돈 1달러만 받고 연방정부에 제공했다. 이 땅은 NASA의 'Ames' 연구소 부지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이 연구소는 엄청난 파생 산업과 기술발전의 촉진제가 됐고 현재 실리콘밸리의 기초가 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단지도 형성됐다.
당초 이 대학에서는 보유 부동산을 개발해 임대사업을 벌이려 했으나 스탠퍼드 공대학장이었던 프레드 터먼 교수가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학교에서 연구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기업들에 99년간 토지를 임대해주기로 결정했고 오늘날 '팔로알토' 연구단지 및 비즈니스 파크가 이로 인해 형성됐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도전의식도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캘리포니아의 파산법은 사업을 하다 망하더라도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는 압수당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봉급도 보장해준다.
한번 부도를 내면 가산을 탕진하고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한국 사회와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새너제이시도 90년대 중반까지는 곳곳에 빈 건물이 눈에 띄는 허름한 곳이었다.
이 곳에 95년 새너제이 주립대,지역 대기업,창투사들이 연계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센터(SBC)와 같은 혁신기관을 설립했다.
이 기관은 가능성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했고 성공 기업이 잇따라 배출됐으며 이후 이들에 의해 새너제이 도심에는 최신식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우선 최신 건물을 건설하는데 대부분 재원을 다 투자하고 이후 소프트웨어 같은 분야에 거의 지원하지 않는 한국식 스타일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사례에서 보듯 혁신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 역할은 인프라를 확충해주고 각종 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것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지녀야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지역이 과수원이었다.
그러나 불과 30년여만에 세계 최고의 첨단산업단지로 도약했다.
실리콘밸리에는 IT(정보기술)와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이 한 곳에 집중돼 있어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연구개발과 제품 생산을 마무리할 수 있고 마케팅을 포함한 지원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일례로 반도체 칩이나 센서의 시제품을 만들려면 소위 '크롬 마스크'가 필요한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컴퓨터로 디자인한 파일을 마스크 하청업체에 보내면 불과 2∼3일만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들도 우수한 전문하청업체와 각종 첨단시설을 활용해 손쉽게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다.
또 양질의 전문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다.
실리콘밸리에는 사업화를 지도해줄 컨설턴트와 비즈니스 전략가,회사 설립후 상장까지 도와주는 회계법인과 법률가들이 즐비하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정부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강한 자생력을 갖고 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불경기때라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정부로부터 교통 등 인프라 개선이나 제도(세제 인센티브) 개선만을 바랄 뿐이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당연히 정부의 간섭을 받게 되고 수많은 보고서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급변하는 IT산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대비했던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혜안도 빼놓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인종차별도 적었다.
학위,출신학교,가문보다는 성공한 사람이 존경받았다.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1931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마운틴뷰'일대의 광활한 토지를 구입,단돈 1달러만 받고 연방정부에 제공했다. 이 땅은 NASA의 'Ames' 연구소 부지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이 연구소는 엄청난 파생 산업과 기술발전의 촉진제가 됐고 현재 실리콘밸리의 기초가 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단지도 형성됐다.
당초 이 대학에서는 보유 부동산을 개발해 임대사업을 벌이려 했으나 스탠퍼드 공대학장이었던 프레드 터먼 교수가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학교에서 연구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기업들에 99년간 토지를 임대해주기로 결정했고 오늘날 '팔로알토' 연구단지 및 비즈니스 파크가 이로 인해 형성됐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도전의식도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캘리포니아의 파산법은 사업을 하다 망하더라도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는 압수당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봉급도 보장해준다.
한번 부도를 내면 가산을 탕진하고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한국 사회와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새너제이시도 90년대 중반까지는 곳곳에 빈 건물이 눈에 띄는 허름한 곳이었다.
이 곳에 95년 새너제이 주립대,지역 대기업,창투사들이 연계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센터(SBC)와 같은 혁신기관을 설립했다.
이 기관은 가능성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했고 성공 기업이 잇따라 배출됐으며 이후 이들에 의해 새너제이 도심에는 최신식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우선 최신 건물을 건설하는데 대부분 재원을 다 투자하고 이후 소프트웨어 같은 분야에 거의 지원하지 않는 한국식 스타일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사례에서 보듯 혁신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 역할은 인프라를 확충해주고 각종 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것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지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