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고려대 총장 president@korea.ac.kr >

우리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서양 속담에는 '아버지가 돈을 벌면 아들은 명예를 바라고 손자는 예술을 즐긴다'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우리네 세상인 모양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억만장자가 된 뒤로도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출장을 갈 때도 신분을 숨긴 채 싸구려 여관에 묵곤 했는데,어느 날 하루는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비서가 안쓰러워 가장 비싼 호텔을 예약했다.

그런데 막상 호텔에 묵으려니까 지배인이 방을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본 즉 "오늘 밤 카네기 아드님께서 호텔 전부를 예약했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비서가 흥분해서 말했다.

"회장님!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서 신분을 밝히시고 지배인을 혼내 주시지요." 그러자 카네기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닐세,내 아들은 부자 아버지를 둔 행운아지만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둔 평범한 사람 아닌가. 방값을 아끼게 됐으니 잘된 일이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과 정부는 부자 아버지를 둔 행운아나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선심성 공약을 내건다.

그러나 정치인이 자기가 번 돈으로 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했다는 소리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도 틈만 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예산을 늘린다.

올해도 4조원이 넘는 추경예산을 편성했는데,자기 돈 같았으면 이런 사업을 벌였을지 의심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노조도 마찬가지다.

해고불가,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노조원들이 정작 자기 돈으로 식당이라도 할라치면 종업원을 전부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식당이 이익을 못 내도 해고하지 않을지 의문이다.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가나 공무원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학교 행정을 책임 맡고 있는 나 역시도 뷰캐넌 눈으로 보면 부는 창출하지 않고,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권한을 키우려고 애쓰는 이기적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뷰캐넌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욕심과 나약함을 인정하고,부가가치를 높이고 공금을 자기 돈처럼 아껴 쓰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네 아들과 손자들도 우리들이 피땀 흘려 이룬 재산을 남의 돈처럼 낭비하는 일이 없을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