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은 신해혁명에 휩쓸려 들어간 한 중국인에 '아큐(阿Q)'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화뇌동하는 굴종형 인격의 대표라고 할 만한 이 중국인은 그러나 '아큐정전'이라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큐는 문화대혁명 때 다시 살아나 홍위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중국 천지를 이념투쟁의 암흑시대로 밀어넣었다.

중국 방문 중에 만난 어떤 한국 기업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홍위병들이야말로 한국이 경제적 성숙을 이룩하는데 10년이라는 절체절명의 기간을 갖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 세력에 저지받지 않고 좀더 일찍 개혁ㆍ개방노선을 추구했더라면 한국은 과연 국민소득 1만달러 고지나마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라며 이 기업인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화둥사범대에서 국제경제학을 가르치는 팡이 교수는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중국은 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침묵하는지를 물었다.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20년 동안은 미국과 일본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이 젊은 여교수는 리드미컬한 중국어 성조로 조용히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침묵하고 있었다.

침묵을 넘어 때로는 노골적인 아부의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97년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은 급거 미국으로 달려가 대학생들과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추는 모습까지 보였다.

또 수백억달러어치의 컴퓨터를 대량 구매하는 등 아시아 외환위기가 만리장성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했다.

중국은 그렇게 오직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국이 몸을 낮춰야 할 대상 국가로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까지 꼽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것은 어쭙잖은 대의명분에 국가의 명운을 걸지 않겠다는 현실론의 결과일 것이고, '지금은 가야 할 길을 달려갈 뿐'이라는 목표가 있는 자의 겸손함도 될 것이다.

여기에 간섭하고 저기도 기웃거리며 요란한 구호와 혁명의 깃발을 흔들어대는 아큐들의 시대는 중국에선 이미 과거사가 돼 있었다.

그것이 한국의 오늘과 오버랩되고 있다.

촛불시위와 구호들과 보ㆍ혁 편가르기의 이념 갈등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라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그것도 분출하는 이념과 깃발과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거친 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권력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굳이 덩샤오핑의 언어로 말한다면 지금 한국은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구분하고자 안달하는, 그래서 세대를 사냥하고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그런 '홍(紅)'의 시대를 질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20년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숫자였다.

이 숫자는 베이징현대자동차에 들렀을 때도 들어야 했다.

'현대의 속도'라는 말을 자랑스레 설명하던 중국인 근로자는 "앞으로 20년간은 파업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근로자에게 한국의 현대차는 파업으로도 유명한데 여기도 파업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짓궂게 물었었다.

"아뿔싸…!"

이들이 말한 20년은 덩샤오핑이 유훈을 통해 앞으로도 20년간은 착실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바로 그 기간이라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때렸다.

개혁ㆍ개방의 20년에 앞으로의 20년을 다시 보태면 개발연대 40년이 종료된다는 말일까.

그 40년을 질주해낸 다음 중국은 과연 무엇이 돼 있을 것인가.

물론 시간표까지 제시하며 총력 동원체제로 달려나가는 국가를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 자체로 국가 정신의 미성숙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것이 넘쳐나면 결국 근린 국가에 크고 작은 피해를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떻든….

그리고 좋든 싫든 대학 교수에서 근로자, 지방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가야 할 목표가 분명했고 그들에게는 이렇듯 국가 행로의 이정표와 시간표까지 들려져 있었다.

정규재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