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질병과의 전쟁이라고 한다.

흑사병은 불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세 유럽인구의 3분의 1인 2천5백만명을 몰살시켜 중세를 끝장나게 만들었고,멕시코에 있었던 아스테카왕국과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잉카제국도 천연두의 괴질이 번져 멸망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최근 30년 동안에도 20여종의 전염병이 새로 나타났다고 하는데,특히 에이즈와 사스,조류독감 등이 장래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수많은 변종 바이러스 또한 언제 어디서 인간을 공격할지 모르는 복병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질병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T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얼굴에 혐오스런 흉터를 남기고 심지어 사망까지도 이르게 했던 천연두는 가장 공포스런 질병중 하나였기에 그 선언이 던진 의미는 컸다.

또 하나 공포의 대상인 소아마비는 아직 퇴치되진 않았지만 예방백신 덕에 머지않아 종식선언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전염병 바이러스의 생명력은 끈질겨 쉽게 박멸되지 않는 것 같다.

신생아 백신접종으로 거의 박멸직전에 갔던 백일해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늑골이 부러질 듯한 발작성 기침으로 치명적이기도 한 백일해가 다시 창궐하는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어릴 때 맞은 백신의 면역효과가 점차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미국에서는 백일해가 다시 출현하자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비상이 걸렸다.

20세기 초 아이들의 주요 사망원인중 하나가 바로 백일해였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긴장이 고조되기는 마찬가지다.

백일해와 같이 과거 유행했다가 사라졌다고 여긴 전염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라고 보건전문의들은 우려한다.

역사를 보면 인간과 질병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자는 없는 것 같다.

생태계 파괴와 생태학적 변화 등을 막는 것이 그나마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아닐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