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당시 여야 정치권에 3백8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은 14일 "당시 한나라당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영일 의원과 재정위원장이었던 최돈웅 의원이 직접 회사 근처까지 찾아오는 등 여러 차례 정치자금 지원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SK 등 다른 대기업에 이어 삼성도 지난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독촉과 회유에 못이겨 불법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밝힌 것으로 대선자금관련기업 재판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완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속행 공판에서 "김 의원이 '시청 근처까지 왔다'며 회사로 전화를 걸어와 '로비에 기자들이 있으니 돌아가라'고 한 뒤 다음날 한나라당에 찾아가 사과했었다"고 밝혀 정치권에 휘둘리는 기업인의 어려운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부회장은 "먼저 50억원을 현금과 채권으로 주는 과정에서 전무이사가 '한나라당에서 다른 그룹은 1백50억원, 2백억원을 낸다고 한다'는 보고를 해와 '아마 3백억원가량을 요구하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 의원이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삼성도 기업 규모에 맞게 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김 의원도 여러번 전화해 그렇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에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손길승 전 SK 회장도 법정에서 한나라당의 강압적 요구에 못이겨 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바 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