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주목했다.

정보화 기술의 발전으로 직접 참여민주정치가 가능해지는 '제3의 물결'이 몰아칠 것이란 그의 전망이 곧 실현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이버크라시(cybercracy) 등으로 표현되는 전자민주주의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대의 정치의 한계를 극복해 줄 희망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인 듯 싶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최근 인사청탁건으로 문제가 된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의 창간 1주년 기념 기고문에서 "80년대 초반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고 지식정보화의 미래에 대해 처음 접했다"며 "인터넷이 신문 방송과 함께 우리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핵심 언로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참여 민주주의 시대를 실감하게 된다"고도 언급했다.

인터넷은 정말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을까.

인터넷시대의 사회 변화를 관찰해온 학자들의 대답은 "글쎄요"다.

우선 새로운 정보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심화돼 선진국과 후진국,세대간 계층간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과거보다 훨씬 더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한 사회 내에서도 이해가 같은 집단끼리만 똘똘 뭉쳐 다른 집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한 참여확대라는 순기능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가 조각나면서 서로 싸움질만 하는 역기능이 더욱 우려된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지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 때 전자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듯 이런 모습은 인터넷이 발전한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된 현상임에 틀림없다.

상용화 10년만에 인터넷 강국으로 떠오른 우리나라에선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진보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사이트에 가면 민주주의 기본인 '토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관심있는 이슈일 경우 엄청난 댓글이 따라 붙지만 거의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일변도와 양보없는 극한 대치로 일관한다.

네티즌은 사라지고 언어폭력을 동원한 극단적인 자기주장만 펴는 싸움꾼인 네티건(네티즌+훌리건)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의 공식 사이트에서까지 '저주의 굿판'이란 자극적 용어를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하고,야당 지도자의 반라(半裸)패러디가 공공연하게 게시되는 걸 보면 인터넷 정치의 해악이 어디까지 왔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3천년 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직접 민주정치가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시민들이 모여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는 공론장이 참여 민주정치의 핵심이었다.

인터넷 민주정치가 가능하려면 이처럼 인터넷 상에서 많은 사람이 토론을 벌이고 중지를 모으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흥적 주장의 집단적 반복이 아닌 숙의(熟議)를 거친 진정한 여론 형성이 없다면 인터넷 민주주의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실체 없는 거품에 불과하다.

만약 인터넷을 공론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이상 우리 사회의 극한 분열과 대립을 막기 위해 차라리 인터넷을 파괴하는 운동이라도 벌이는 것이 어떨는지 모르겠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마구잡이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던 19세기 초 기계를 파괴하려 했던 러다이트운동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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