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후인 지난 4월부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여부를 놓고 정부와 여당 간에 빚어진 갈등이 석 달만에 어정쩡하게 봉합됐다.

당정이 지난 14일 합의한 '아파트 분양제도 개선안'은 정부가 당초 제시한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라는 틀 속에 건축비,택지비 등 주요 항목의 원가를 공개하는 방안을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원가공개를 총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여당의 체면 세우기용이라는 것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번 합의안을 보면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2002년 원가공개가 의원입법으로 추진되면서 불거진 문제가 정부의 노력으로 겨우 절충점을 찾아가던 중에 여당의 정치적 접근에 의해 되레 헝클어져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장사(시장)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나 어렵사리(?) 마련된 합의안은 결국 정치적 해법이었다.

이번 당정협의 결과에 정작 시민단체나 주택건설업계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정부와 여당의 갈등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까지 재론(再論)과정을 거친 합의안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지난 석 달간 당정이 머리를 맞대고 시장가격(주변시세)에 의해 책정되는 분양가 결정 시스템이나 건설업체에 적용되는 회계시스템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면 어땠을까.

여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별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해법을 하나 더 끼워넣은 것보다는 덜 쑥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대다수 전문가들로부터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진단을 받은 원가공개 여부에 대한 이번 합의안(주요항목 공개)은 실효성 측면에서도 '사족(蛇足)'임이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어떤 식으로든 원가공개가 법제화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논란의 시작'이라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6년 만에 분양가 자율화 기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절충안(원가연동제)을 마련한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황식 건설부동산부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