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회고록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물푸레) 한국어판이 2권까지 완간됐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클린턴에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클린턴은 주지사로 당선됐던 30대 초반부터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면서도 대중연설 능력과 비전제시 등 탁월한 정치 감각으로 역경을 극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클린턴을 평가할 때 능수능란한 정치인이라는 시각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미국경제를 살려낸 그의 치적을 간과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정책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면 그가 거의 본능적인 경제감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고록에서 상세히 언급했듯이 클린턴은 다섯번에 걸쳐 아칸소 주지사를 지내는 동안 성장 복지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경제문제에 대한 감을 터득했다.

주지사 시절 그의 정책은 'tax-and-spend'로 요약할 수 있다.

지출이 필요하다면 세금을 올려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됐을 때 그가 당면한 문제는 아칸소 주정부 관리의 경험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전임자인 레이건과 부시가 남겨놓은 약 4조달러의 재정적자를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세금을 올리고 재정지출을 줄이면 재정적자를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하강기에 재정적자를 축소하면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경기를 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하나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국내금리가 높아야 한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가 줄어들고 주택담보대출이나 자동차 할부금융을 갚아야 하는 중산층에 타격을 주게 된다.

정책의 선택이란 이같이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행정부가 금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 기업들의 반발도 무마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면 당장의 금리는 높게 유지하지만 장기금리를 내린다는 확신을 경제주체들에게 주어야 한다.

이 같은 갈등상황을 클린턴은 잘 조율해 나갔다.

클린턴은 미시적 문제뿐 아니라 거시적 구조도 제대로 파악했다.

그는 취임 당시 미국경제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산업구조가 해체되고 정보통신이 주도하는 신산업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이 나 홀로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클린턴의 상황파악은 정확했고 그의 시대에 미국경제는 사상 최고의 생산성 증가를 기록했다.

그래서 모두 클린턴이 신경제(New Economy)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이제와서 평가해 볼 때 클린턴은 정책 목표를 만족스럽게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의 재임 중 장기금리는 그리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을 믿고 투자를 해주었다.

특히 IT산업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면서 미국경제는 사상 최장 기간 확장국면을 지속했다.

전문가들은 클린턴의 정책이 좋았다기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는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경제정책의 성공비결이 '신뢰'라는 것은 침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경제에도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유한수 바른경제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