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경기를 진작하는데 주력했다.

내수부양을 위한 핵심정책은 바로 신용카드를 많이 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에 1백50만원까지 사용할수 있는 신용카드는 일부 국민들에게는 패가망신의 원흉이 됐다.

호주머니가 빈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지출 수단이 없었던데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심리까지 겹친 결과다.

이때문에 4백만명에 가까운 신용불량자가 양산됐고,카드연체액은 10조원이 넘었다.

이같은 '국가적 재앙'의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 8개월 동안 실시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疋)'꼴이었다.

말 그대로 태산이 떠나갈 듯 떠들썩했던 것에 비해서 결과는 '부실 덩어리'였다.

카드대란의 책임을 물은 것은 금융감독원 부원장에 대한 인사조치 통보가 전부였다.

유령주식발행 방치 등의 책임을 물어 카드대란과는 무관한 '잡범'수준의 금감원 관계자 6명을 문책한 것은 어찌보면 희극에 가깝다. 카드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경제부총리 등은 문책에서 제외됐다.

감사원은 감사초기에 미국 일본 영국 등 해외 8개국의 금융감독사례를 찬찬히 훑어보고 완벽한 감사결과를 내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렇지만 결론은 실패한 정책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복동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은 "IMF환란 감사 때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의뢰하는 수준이었다.

정책결과에 책임을 물으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에게 경직성을 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번 감사도 결국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을 평가 단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줬다.

'제식구 감싸기''초록은 동색'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감사결과였다.

김형배 정치부 기자 k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