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시장에서도 돈이 돌이 않는다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요즘처럼 재테크 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사람의 몸처럼 손발부터 썩어 들어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론적으로 재테크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다.

통화유통속도란 일정기간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잘 돌지 않아 재테크 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0.66에 달했던 통화유통속도가 올 1분기에 0.61로 하락된 것으로 추정됐다.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승수다. 통화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고성능화폐,high-powered money)로 나눈 수치다.

한 나라의 통화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보유성향과 예금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 그리고 본원통화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본원통화가 일정할 때 현금보유성향과 지급준비율이 커질수록 통화승수는 떨어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통화승수를 보면 지난해 24.9에서 올 1분기에는 23.9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중 본원통화와 지급준비율이 변경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현금보유성향이 늘어나 시중에서 돈이 퇴장되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재테크 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음에 따라 종전에 우리가 알았던 재테크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상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이미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투신권의 수시입출금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나 은행의 단기금융상품에 재테크 자금이 몰리고 있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산디플레 현상이 늘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값이 떨어져 재테크 생활자들의 현금흐름이 악화됨에 따라 기존의 자산가치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거나 상가의 권리금이 떨어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요즘 우리 경제 내에서 이중침체와 일본식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시각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가와 부동산값의 하락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소비가 감소하는 '역자산 효과(anti-wealth effect)'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결국 재테크 시장에서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시중에 돈을 돌게 해야 한다.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지금의 돈맥 경색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책당국과 정책수용층 간의 신뢰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빠른 시일안에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