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잇따라 터진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결과 연쇄살인범은 올들어 최근까지도 여성 출장마사지사 등 11명도 무차별 살해한 뒤 암매장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20명을 죽이는 희대의 살인극을 벌였다.

이번 범행은 금전이나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아니라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증오심때문에 자행됐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허준영 서울경찰청장은 18일 서울지역 부유층 노인 및 부녀자 연쇄살인 용의자인 유영철씨(34)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씨가 부산 등지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함에 따라 수사를 확대해 여죄를 밝히기로 했다.

◆ 범행 개요 =유씨는 지난해 9월24일 서울 신사동의 모 대학 명예교수인 이모씨(73)와 부인 이모씨(68)를 살해하면서 서울판 '살인의 추억'의 서막을 올렸다.

이어 10월9일 종로구 구기동 주차관리원 고모씨(61)의 단독주택에서 고씨 어머니 강모씨(85) 등 부유층 노인 등 모두 8명을 연쇄 살해했다.

유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부유층 노인 살인을 중단한 뒤 올 3월∼7월 서울지역 보도방ㆍ출장마사지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김모씨(25ㆍ여) 등 11명을 잇따라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 "부자와 여자가 미웠다" =범행동기는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증오감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씨는 절도죄로 수감 중 안마사였던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고 출소 뒤에는 전화방에서 일하던 김모씨(여)에게 청혼을 했으나 전과자,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거절당하자 여성과 특정직업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고 경찰은 전했다.

◆ 계획된 범죄, 치밀한 범행 =부유층 노인 상대 살인의 경우 사전에 범행 대상을 선정해 저지른 계획 범죄였다.

유씨는 범행현장을 사전답사해 대상을 정한 뒤 범행에 들어갔다.

목격자를 피하기 위해 길가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정원이 넓어 집안 상황을 알 수 없는 부유층 저택을 노렸다.

범행 시각은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노인 혼자 집을 지키는 점심시간 전후나 오후 시간대를 택했다.

범행 후 증거인멸 작업은 더욱 철저했다.

지문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체모나 정액 등 DNA 추적을 당할 만한 단서는 남기지 않기 위해 방화도 했다.

범행 후 경찰 불심검문에 걸리면 일부러 간질 증세를 일으켜 검문을 벗어나곤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 전화방업주 제보가 해결열쇠 =유씨를 체포한 수사경찰은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첫 살인사건 이후 부유층 희생자가 8명으로 늘어나자 경찰은 현상금 5천만원을 내거는 등 시민제보를 기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들어 범인이 보도방, 출장마사지사를 범행대상으로 삼아 살인행각을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최근 출장마사지사가 계속 실종되는 것을 이상히 여긴 모 전화방 업주가 경찰에 제보를 해온 것.

경찰은 지난 14일 "여성 출장 마사지사들이 30대로 추정되는 한 손님의 전화를 받고나가기만 하면 사라진다"는 전화방 업주의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범인과 마사지 여성이 만나기로 약속한 현장에 출동, 15일 새벽 유씨를 긴급체포했다.

◆ "사회적 소외감이 증오심으로" =전문가들은 유씨가 이처럼 잔인한 연쇄살인마로 변모한 이유를 "분노와 증오로 변한 개인적ㆍ사회적 소외감이 공격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의 불우하고 빈곤한 처지 역시 부자들이 자기 몫을 빼앗아간 탓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부자들을 응징해야겠다는 극단적인 적개심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