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칠레방식 국민연금 민영화 논의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칠레방식으로 국민연금을 민영화할 경우에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칠레는 종전 사회보험 방식의 공적연금을 재정상 이유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1981년 연금개혁을 단행해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지는' 민영연금제도로 전환했다.

페루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멕시코 폴란드 헝가리 등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시행한다. 이들이 민영연금을 채택한 이유는 국가의 과도한 재정부담을 덜고 적립방식으로 재정건전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강제저축에 의한 높은 저축률이 투자를 촉진해 경제성장이 달성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칠레의 연금민영화는 시행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초기에는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의 완화와 국가의 재정부담 축소,민간 연금기금관리회사(AFP)의 자유로운 선택,높은 수익률,국가의 최저연금 보장을 통한 연금제도의 안정성 등의 긍정적 평가였다.

특히 민영화 옹호론자들은 개인저축계좌 방식이 국내 저축의 증대,연금기금관리회사들의 투자에 의한 자본시장 육성과 기업투자 확대 등을 가져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연금민영화와 경제성장 간의 밀접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초기의 성과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첫째 강제 적용대상인 근로자의 보험료 납부율이 떨어지고, 임의 적용대상인 자영업자의 가입률이 저조하며 게다가 납부율도 하락해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가 빈곤에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둘째 연금보험료는 소득의 최저 10%에서 20%까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고소득자들에게는 더 많은 연금수준을 보장하고 저임금근로자,실업자,여성들의 연금수준은 더 적게 돼 이들의 퇴직 후 생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셋째 연금기금관리회사들 간에 가입자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으로 보험료 수입의 20%(정액 수수료 포함) 이상을 관리운영 비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순수익률이 낮아지고 이는 결국 연금수준을 삭감하는 결과로 작용된다.

넷째 특히 경제위기시 투자된 자산가치의 폭락으로 인해 원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노후소득보장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어도 20년 이상 연금보험료를 납부했으나 충분한 연금기금을 적립하지 못한 모든 가입자들에게 최저연금을 보장하는 보완책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보험료의 납부동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또한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 제도 전환에 따른 국가재정 소요가 막대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제도 전환비용,국가에 의한 최저연금보장과 관리운영 비용을 포함할 경우 민영화된 연금제도가 초래하는 비용이 칠레 국민총생산(GNP)의 5∼6%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민영연금은 가입자의 개인저축계좌에 적립된 원금과 기금운용 수익의 합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확정기여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금운용 수익률의 하락이 적정 연금액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민영화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칠레연금제도는 공적연금을 민영화했음에도 불구,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막대한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등 당초 기대와 달리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영화는 국민연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사각지대,소득재분배,사회적 연대성,국가의 재정부담 등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정확한 검증 없이 칠레의 연금민영화 개혁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과연 현실성이 있고 타당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연금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제도 운영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회보험방식을 포기하지 말고 우리 현실에 맞게 보완·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icnoh@np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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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8일자 경희대 안재욱 교수의 시론 '국민연금 민영화해야'에 대한 반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