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중국인 친구가 최근 베이징을 다녀온 뒤 기자를 만났다.

그는 대뜸 "베이징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말을 건넨다.

이유를 묻자 그는 현대자동차 얘기를 꺼낸다.

"베이징 택시기사 여러명에게 '현대 쏘나타가 어떠냐'고 물었다.

'차는 좋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현대차를 얕보는 심리가 숨어있었다.

'대(大)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어찌 아시아 작은 나라의 자동차를 대표 브랜드로 만들수 있느냐'라는 자존심이다.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공무원 대학교수 등에서도 같은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

베이징 사람들은 품질은 인정하면서도 특유의 자존심으로 현대차를 외면하고 있다는 게 친구의 얘기였다.

베이징현대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후원 사업권을 상하이폭스바겐에 빼앗긴 데에는 이런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많이 변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기자가 처음 베이징에 왔던 5년여 전.중국인에게 한국은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한국인을 만나면 IMF를 극복한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지금은 다르다.'대통령 탄핵''인질 피살' 이미지가 더 강하다.일부 지식인들은 '다당제로 인한 정치불안'을 얘기하며 한국정치를 예로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인터넷을 타고 중국전역에 퍼지면서 한국의 속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수교 12년의 짧은 기간에 한국기업이 빠르게 중국을 파고든 뒤에는 한국 이미지가 있었다.

그게 바로 한류를 만들었고,한류는 한국상품에 힘을 실어줬다.

상하이 친구가 들려주는 현대차 이야기는 그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친구는 헤어지며 "한국은 정말 축구 잘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는 "한국이 중국에 자랑할 것은 이제 축구밖에 남지 않았어"라는 말로 들렸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