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꾸준하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65)의 장편소설 '블랙박스'(열린책들 刊)가번역돼 나왔다.

'블랙박스'는 1970년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이혼한 남녀와 주변인물들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 1987년 이스라엘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이듬해 프랑스에서 그해 최고 문학작품에 주는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이혼 후 각각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남녀가 아들 문제로 편지를 나누며 애정과 연민의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을 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학자가 되어 미국에 살고 있는 알렉에게 7년전 이혼한일라나로부터 편지가 온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 아들 보아즈를 연줄을 통해구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일라나는 이스라엘에서 유대교 신자 미셸과 재혼해 살고있다.

남편 미셸은 이스라엘에서 아랍인을 몰아내고 '성서'의 땅을 회복해야 한다고주장하는 우파 시온주의자이다.

미셸은 알렉이 일라나와 보아즈에게 지은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려면 아랍인에게서 이스라엘 땅을 사는데 필요한 돈을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들 보아즈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킨다.

알렉의 변호사는 그런 보아즈 때문에 미셸에게 돈을 보내는 알렉에게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다.

소설은 알렉과 일라나를 포함해 다섯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돼 있다.

알렉은 독재자같은 아버지에게 억눌려 다른 이들과 제대로 애정을 주고받지 못했고,일라나는 그런 알렉에 대한 애증때문에 과거 알렉의 부하들과 간통을 저질렀던 사실이 편지를 통해 드러난다.

알렉과 일라나는 여전히 경멸과 증오로 가득찬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편지를 통해 과거의 잔해를 헤집는 것을 추락한 비행기의블랙박스를 해독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알렉이 전처와 아들에게 마음을 쏟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일라나는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알렉을 돌보며 애틋한 애정을 확인한다.

작가 아모스 오즈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히브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뒤 25년간 키부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쓰기와 농사를 병행했다.

1965년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를 발표한 이후 다수의 문제작을 발표하며 현대 히브리 문학의 거장으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을 알려면 그의 작품을 읽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내면과 생활모습을 자세하게 그려온 작가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반전단체 '즉시 평화'를 이끌고있다.

곽영미 옮김. 368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