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터 앤드 갬블(P&G)사는 1999년에 혁신에 대한 접근방식을 전면 수정하고 나선다.

21세기 진입을 목전에 둔 때였다.

골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부에서만 구하지 말고 밖으로 눈을 돌려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임무를 담당할 자리(Director of External Innovation)를 만들었고 혁신의 외부조달(아웃소싱)비중을 2002년 10%,2007년 50%로 한다는 목표치까지 설정했다.

과학자만 8천6백명이나 되는 기업에서 굳이 그래야 할 까닭이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P&G 밖에는 무려 1백50만명의 과학자들이 있다.

왜 모든 것을 내부에서만 발명하고 해결해야 하는가."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의 저서 'Open Innovation(열린 혁신)'에서 소개된 사례다.

통신장비 시장에서 루슨트와 시스코 두 회사의 경쟁 역시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막강한 벨연구소를 거느린 루슨트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내세울 것도 없던 시스코는 신기술 신생기업들에 대한 투자나 파트너십 또는 인수합병 등으로 대응해 나갔다.

외부 연구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루슨트에 성공적으로 맞섰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얘기다.

토머스 쿤이 말한 그대로 '패러다임의 변화'라 할 만했다.

그것은 바로 '닫힌' 혁신에서 '열린' 혁신으로의 변화였다.

IBM이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던 것도 마찬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기업 제록스와 팔로알토연구소가 공식적으로 분리된 것이라든지 휴렛팩커드의 HP연구소가 HP와 애질런트 두 회사로 쪼개진 것 역시 그렇다.

이런 변화를 몰고 온 동인(動因)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는 인력의 이동성이라든지 벤처캐피털의 등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대기업 중앙연구소의 이런 수난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회주의의 몰락에서 이미 예고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계획경제 사회주의 국가들도 혁신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혁신 성과는 엇갈리고 말았다.

그것 역시 '닫힌' 혁신과 '열린' 혁신의 차이와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어쨌든 수많은 신기술 신생기업들 중 누가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지 모르고,그런 현실에 자극받아 기존의 대기업들은 새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또 그 과정에서 신생기업과 대기업간 신기술에 대한 공급과 수요 관계가 복잡하게 형성되는 것,그런 것이 바로 경제의 역동성이고 지속적인 성장원천일 것이다.

최근 정부는 경제장관간담회를 통해 '연구개발서비스업 육성방안'을 내놨다.

연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창업기업,대기업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 등에서 분사한 기업 등을 중점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것을 '열린' 혁신을 향한 의미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관건은 역시 연구개발 아웃소싱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 던져 봐야 할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의 연구개발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신기술 신생기업의 창출로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는가.

대기업이 기술시장에서 투자 출자 등 다양한 형태로 기술 수요자 역할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없는가.

벤처캐피털 등 금융시장은 얼마나 선진화돼 있는가.

경쟁촉진 정책은 또 제대로 돼 있는가.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과 함께 활용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고급연구 인력이 모여 있는 대학의 수준은 어떠한가 등등.과연 우리는 얼마나 '열린' 혁신을 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