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우퍼스웨이트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홍콩에 파견한 자문관이었다.

전쟁중 일본에 의해 파괴된 홍콩을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자유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최소한에 그쳤다.

관공서가 경제활동에 관여하는 일을 가급적 금했는데,관세를 물리지 않고 심지어는 국민총생산을 계산하는 것조차도 피했다.

이 같은 카우퍼스웨이트의 정책은 오히려 사회의 역동성을 불러일으켜 홍콩의 부흥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5년에 독립된 싱가포르의 경우는 정반대다.

리콴유 초대 총리는 '클린 & 그린 싱가포르'를 국가적 지상과제로 삼고 엄격한 통치를 펼쳤다.

사회정화를 위해 깡패와 매춘을 단속했고,공무원의 부정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해도 용납하지 않았다.

교통위반은 물론이고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려도 벌금을 물렸다.

위법자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처벌로 응징했는데 지금도 원시적인 태형이 합법화돼 있다.

결국 그의 정책은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와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부국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공적으로 리콴유는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총리에서 물러나 있지만 아직도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강하다.

리콴유의 장남인 리솅룽 부총리가 다음 달 12일 총리로 취임한다는 소식이다.

권력세습이라는 일부의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가 대단하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온 그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의 하버드대학을 다녔고 무역공업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인 리솅룽은 경제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의 경제정책은 그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리솅룽이 순조롭게 총리직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남겨있는 숙제도 만만찮다.

대만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중국과의 긴장,갈수록 높아지는 실업률과 빈부격차, 그리고 노사갈등 등이 당장의 현안이다.

또 각종 제약이 많아 '보모국가(Nanny state)'로 불리는 싱가포르를 리솅룽이 자국민에게 어떻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해 줄지도 관심거리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