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20일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심포지엄 축사를 통해 "우리 경제가 구조적 요인에 의해 수출호조가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내수부진이 장기화하고 있으며 통화 재정 등 거시경제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걱정했다.

실물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성장이 지체되고 투자환경이 악화되는 일본식 불황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물론 박 총재도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밝혀온 것과는 다른 의미여서 주목된다.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총재는 "90년대 일본과 같은 자산가격 거품 붕괴는 없을 것이며 한국은 축적형 모델"이라고 강조했었다.

박 총재는 이와 함께 "고(高)임금 고지가 고물가 등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되고 사회적 욕구마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가 제조업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자금수요가 감소하면서 한은이 돈을 풀어도 시중유동성이 별로 늘지 않는 등 통화량이나 투자가 금리 변동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경화(硬化)현상마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박 총재는 설명했다.

경제의 활력이 극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박 총재는 따라서 "한국 경제는 성장환경 전환에 적합한 패러다임을 찾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선진경제로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