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고려대 총장 president@korea.ac.kr >

내년 5월5일이면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이 개교 1백주년을 맞는다.

그 기념품으로 프랑스산 고급 와인 '라 카르도네'를 정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다.

이 대학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민족의 대학'으로서 성장해왔다.

민족의 기개를 상징하는 '호랑이'와 민중의 애환을 상징하는 '막걸리'가 이 학교의 상징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1백주년 기념품으로 난데없이 프랑스산 고급 포도주라니,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대학들도 '세계의 대학'으로 변모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왔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시작한 일도 '글로벌 KU 프로젝트'였다.

강의의 30%를 외국어로 진행하도록 했고,교직원들을 외국 유명 대학에 보내 발전된 학교행정 시스템을 체험하도록 했다.

외국어 전공 학생들에게는 해당 국가의 대학에서 한 한기 이상 수업을 받도록 했다.

목표관리제도를 도입,학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양하고 대학별 원가계산제도를 도입했다.

그랬더니 일부에서는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을 이윤추구의 장으로 만든다느니,이제는 '민족 고대'가 '신자유주의 고대'로 바뀌었다느니 하는 비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1백년 전 선각자들과 민중들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대학을 세운 이유가 뭐였겠는가.

전통에 매몰되지 말고 세계의 첨단 학문,기술,문화를 익혀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이번에 1백주년 기념품으로 '라 카르도네'를 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놀랐다.

각계로부터 '글로벌 대학'으로 변신하려는 노력에 대해 이해와 격려를 보내와 새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 가운데서도 어떤 친지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안타깝네요.

그 때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막걸리를 세계의 고급 술로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 열대 우림에 사는 부족들을 연구했다.

인간사회의 다양한 문명에는 기술적 차이는 있어도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빠르게 세계화되는 오늘날 세계인에게 널리 수용되는 문화를 많이 개발하고 보유하는 민족일수록 더 부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 카르도네'와 경쟁하는 막걸리 브랜드가 만들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