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째 정부는 경기를 회생시켜 보겠다고 상반기마다 소위 재정의 조기집행에 열심이었다.

하반기에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경을 편성해서 지출 수준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대로 승수효과가 나타나서 내수가 금방 살아나고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으련만 경제는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내수부족 때문에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청년실업이 심각해진다고 하니까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아서 그렇다거나 기업이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등의 원망이 나오고 있고 기업들을 회유하거나 눌러서 투자를 하게 하려는 시도까지 나타나고 있다.

재정이라도 좀더 화끈하게 풀어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국가채무문제를 생각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다.

당장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을 보면 OECD의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국가채무문제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통계숫자의 단순비교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통계숫자에는 경제와 사회의 질적인 측면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데도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경제나 정치, 그리고 사회가 그만큼 안정돼 있고 돌발적인 위험요인이 크지 않아서 그러한 통계수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정이 지속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통일 안보,그리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의 불안정 등 매우 규모가 큰 재정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어서 빚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정을 유연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대안은 다시 한번 높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이제는 선진국들처럼 저성장시대, 즉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벌써 그러한 조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우리경제와 사회가 깊이 병들어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높은 성장의 추구는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전제로 한다.

현 상황에서 적자재정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자극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럴 만한 재정적 여유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

오히려 중장기적인 재정수요 급증의 위험을 극소화하기 위해서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철저하게 요구하고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의 효율화를 위한 획기적인 개혁을 서둘러야 하며 합리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해서 불필요한 재정지출이 줄어들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경제를 회복시키고 나아가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게 할 것인가?

단기적 경기대응적 접근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매우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반시장적 제약이 너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대외적인 것들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문제들이란 점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호전될 수는 없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끈질긴 노력과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장원리에 의한 규칙을 확실히 하고 이러한 규칙들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시장원리를 말로 부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시장원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뜻밖에 드물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혁신이 진정한 의미의 합리적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확신을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심어주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정책당국자나 일반 국민들이 편향된 평등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개혁 자체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만 현저히 해소돼도 투자마인드는 의외로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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